- 나무의 기억과 물고기의 움직임으로 풀어낸 회복과 희망의 서사

참여 작가 가운데 이정인작가는 생명을 다한 나무를 수집해 수천 마리의 물고기 형상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는 나무의 나이테와 고유한 색감, 갈라진 표면에서 한때 숲의 일부로 살아온 시간과 생명의 기억을 읽는다. 폐목은 그의 손을 거쳐 더 이상 버려진 파편으로 머무르지 않고, 거친 물살을 헤쳐 나아가는 생명의 무리로 다시 태어난다.
이정인 작가에게 나무는 지나온 모든 시간을 품은 타임캡슐과도 같다. 나이테 속에는 나무를 길러낸 물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축적된 시간은 자연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회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나무를 만지고 깎고 다듬는 행위를 통해 굳어버린 생명에 다시 숨을 불어넣으며, 상처 입은 존재를 어루만지는 치유의 과정을 작품으로 이어간다.
특히 작가는 나무의 정적인 성질에 물고기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결합한다. 물고기는 거친 물살 속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로, 삶의 고통과 절망을 견디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한다. 작품 속 수많은 물고기는 서로 부딪히고, 때로는 길을 잃으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이루며 생명의 지속성과 희망을 드러낸다.
작업 과정에서도 나무 본연의 형태와 질감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작가는 폐목의 결이나 굴곡을 과도하게 변형하지 않고, 섬세한 톱질과 최소한의 조형을 통해 그 안에 잠재된 물고기의 형상을 찾아낸다. 이는 나무에 새로운 형태를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나무 안에 존재하고 있던 생명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밖으로 꺼내는 과정에 가깝다.

이정인 작가는 흔히 불가능한 일을 비유하는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말을 역설적으로 작업에 끌어들인다.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해낸다는 불가능한 상상을 실제 작품으로 구현함으로써, 버려진 존재가 새로운 생명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예술의 힘을 보여준다. 이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상처를 딛고 다시 빛나는 존재로 나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예술적 신념과도 맞닿아 있다.
전시 제목 《시간의 결》에서 ‘결’은 나무의 무늬이자 시간이 남긴 흔적이며, 삶이 흘러가는 방향과 축적된 경험을 의미한다. 이정인 작가의 작품은 나무에 새겨진 시간을 따라가며, 생명을 다한 듯 보이는 존재 안에도 여전히 움직임과 기억,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전한다.
잇다스페이스 작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나무에 새겨진 시간과 작품 속에서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을 천천히 마주하기를 바란다. 버려진 나무가 물고기가 되어 다시 움직이는 장면은, 우리 삶의 상처와 멈춤 또한 새로운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정인 작가는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지금까지 25회의 개인전과 16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21년 아트프라이즈 강남 우수작 선정, 2020년 행정안전부 장관상 표창, 2019년 대한민국 신창조인 대상 조형부문, 2018년 조형아트서울 공모 대상 등을 수상했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 등 해외 전시와 아트페어에도 참여하며 작업 세계를 확장해 왔다.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bp_kmh@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