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박 전무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자자, 음료 주문 받습니다.” 모두들 놀라 박 전무를 쳐다봤습니다. 말이 좋아 포럼 ‘회원’이지 서로 깊이 알지는 못하는 사이인 데다 다들 퇴직한 입장이라 선뜻 지갑을 열기 부담스러워 눈치를 보던 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기꺼이 주머니를 연 박 전무의 커피 한 잔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습니다. 약간 어색하던 분위기가 금세 풀렸고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분위기가 한층 편안해지자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박 전무님, 요즘 사업 잘 되시나 봐요?”
“에이, 그런 거랑 상관 없어요.” 그러면서 말을 잇습니다. “회사 그만두니까 제일 먼저 줄어드는 건 돈이 아니라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전 사람과 관련된 일에는 돈을 무조건 아낀다고 좋은 게 아닌 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술값은 못 냅니다. 커피값 정도까지만 낼 수 있어요. 하하.”
박 전무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흘려 들을 수 없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박 전무는 불필요한 지출은 한 푼이라도 아까워했지만 써야 할 곳이라고 판단이 서면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마음 맞는 사람 만나고 새로운 지식을 쌓고 삶의 반경을 넓히는 일에는 기꺼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돈을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키는 수단으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나를 포함해 퇴직한 많은 사람들이 지갑이 얇아진 것을 걱정합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뚜렷한 기준 없이 돈을 쓰면 체면과 우쭐거림, 주변 분위기에 끌려 다니기 쉽습니다. 박 전무는 진정한 퇴직이란 직장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나를 움직이던 타인의 시선과도 결별해야 한다는 걸 알았던 것 같습니다. 노년의 행복과 여유는 자기 철학을 갖고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또 배웠습니다. ^^*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sglee640@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