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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수박의 기적

이순곤 기자

입력 2026-07-30 06:42

구글 이미지 캡쳐
구글 이미지 캡쳐
수박을 좋아합니다. 여름에 가장 좋아하는 과일입니다. 과일은 여름 과일이 맛있습니다. 강한 햇볕을 받으면서 당도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갈증을 해소하는 데는 수박 만한 게 없습니다. 웬만한 음료수보다 훨씬 낫습니다. 하지만 수박은 귀찮습니다. 먹으려면 할 일이 많습니다. 껍질이 너무 두꺼워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하기도 만만치않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즘은 도시락 수박이라는 게 있습니다. 껍질을 제거하고 빨간 속살만 도시락처럼 생긴 용기에 담아서 팝니다. 당연히 비쌉니다. 요즘 수박 한 통에 2~3만 원 정도인데 도시락 수박 하나에 8천 원 정도 합니다. 파는 데마다 가격과 사이즈가 다르지만 그 귀찮은 껍질 처리 비용에다 쪼개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노동력까지 포함된 가격이니 당연히 비쌀 수밖에요. 내가 수박을 보면 돼지처럼 먹기 바쁘고 껍질 처리할 궁리를 하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박을 먹는 기쁨은 우선 식칼을 들고 이 검푸른 구형의 과일을 두 쪽으로 가르는 데 있다. 잘 익은 수박은 터질 듯이 팽팽해서 칼을 반만 밀어 넣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열린다. 수박은 천지개벽하듯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초록의 껍질 속에서 새카만 씨앗들이 별처럼 박힌 선홍색의 바다가 펼쳐지고 이 세상에 처음 퍼져 나가는 비린 향기가 마루에 가득 찬다. 한번의 칼질로 이처럼 선명하게 세계를 전환시키는 사물은 이 세상에 오직 수박뿐이다.”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서 본 대목입니다. 노벨상 수상자 한강도 수박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준 적 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한강은 못 다 이룬 꿈을 자식을 통해 성취하겠다는 부모의 소유욕에 염증을 느꼈고 다가오는 세상의 잔혹한 현실을 생각하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좋겠다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갈 만하잖아? 여름엔 수박도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땐 물도 단데 그런 거 다 맛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한강이 느닷없이 웃음이 터진 것은 그 때였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여름에 수박이 달다는 건 분명한 진실로 다가오더랍니다. 물론 아이도 낳았습니다.

한여름에 수박 자르는 모습을 그렇게나 많이 봤는데, 심지어 내가 자른 적도 있는데 김훈처럼 한 번도 놀라지 않는 나 자신에게 놀랍니다.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 여름에 수박을 베어 문 수박을 상상하는 것 같은 사소한 것으로 결정되기도 한다는 데서 또 놀랍니다.

녹색이던 수박이 칼이 닿는 순간 빨강으로 바뀌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그처럼 찬란하게 펼쳐지는데 이 나이 될 때까지 왜 나는 왜 한번도 보지 못했을까, 한탄하면서. 수박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고 천지가 개벽했다고 감탄하고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부럽습니다. ^^*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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