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신문

2020.11.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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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연구소장 임성순
[한글연구소장 임성순]
한류(K-Culture)가 지구촌을 뒤덮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이다. 심지어 인류 역사상 최고의 가수가 될지도 모른다. K드라마 역시 거의 모든 국가에서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만화의 나라 미국과 일본에서 ‘세상에 없던’ K웹툰의 인기가 하늘을 뚫고 나갈 지경이다.

한류는 일종의 마약과 같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고 확산 속도 역시 걷잡을 수 없다. 한국의 노래, 드라마, 영화, 음식, 만화, 게임 등에 매혹된 팬들은 한국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즐긴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가 세계 최고의 문학 작품으로 평가 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

한류는 수백 년 지배해온 고질적인 서구의 문화적 패권주의를 급격하게 무너뜨리고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 선남선녀가 세계 미(美)의 중심이 되고 있다. 정국(방탄소년단)과 지수(블랙핑크)가 제임스 딘과 올리비아 핫세의 아름다움을 대체하고 있다. 한류 덕분에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도 깨지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외국에서 ‘예기치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인이면 무조건 좋다는 외국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다.

세계 인구 1%도 안 되는 대한민국이 미국에 이어 대중문화 강국이 되었다. 아니 십수년 안에 미국에서 한반도로 문화 패권이 건너올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한류의 원인에 대해서 국내외 전문가들은 한류 콘텐츠의 높은 완성도, 국제적 지향성, 한국적인 정서 등을 꼽는다. 가장 한심한 분석은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중일 전문가들이 한류를 폄훼하기 위해 내놓는 치기 어린 분석이다. 국책으로 한류를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전 세계 대중문화의 주류가 된 것은 타 국가에 비해 뛰어났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군함과 대포로 겁박해서 할리우드가 세계 대중문화를 지배한 것이 아니다. 문화란 물과 같아서 모름지기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다. 영화 <대부>가 재미와 감동으로, 전설적인 팝가수 마이클 잭슨이 뛰어난 춤사위로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모든 문화는 사람에게서 나오고 사람은 언어로 만들어진다. 영미권 문화가 주류가 된 것은 바로 ‘영어’ 덕분이다. 대부와 마이클 잭슨이 국책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마찬가지로 <기생충>과 방탄소년단도 국책의 산물이 아니다.

문화는 언어이다. 영어권 국가 중에서 못 사는 나라가 있는가? 영어권 국가는 거의 예외 없이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가장 단적인 예가 바로 남아공이다. 정치경제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군계일학처럼 우뚝 서있다. 바로 영어 덕분이다. 남아공이 인류 역사상 최고 현자 일론 머스크를 배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막 진입하던 9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서 한류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왜 90년대 후반인가? 그때부터 진짜 대중문화 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미국만이 압도적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국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뿌렸다. 즉 미국 외에 그 어떤 나라도 유통수단을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달로 유통혁명이 일어났다. 정보혁명으로 사람들은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대중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249개국 중 거의 유일하게 한국 대중문화가 철옹성 같았던 할리우드 장벽을 뚫었다. 한류가 더 큰 재미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이 전 세계 국가 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문화경쟁력을 갖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한글이다. 세종대왕이 1443년 만든 한글이 한반도에 초신성 대폭발보다 더 큰 문화적 혁명을 몰고 왔다. 중국의 변방에 불과했던 작은 나라,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반도 국가가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경제적 번영과 동시에 민주화를 달성했다.

조선은 중국, 러시아, 일본의 장벽에 갇혀 문명개화가 수백 년 늦었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치욕을 맛보았다. 조선은 말과 문자를 빼앗기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까지 맞이했다. 사실 이때가 우리 역사에서 최악의 위기였다. 한글이 없는 조선인은 ‘앙꼬 없는 찐빵’ 보다 못한 신세이다. 일본인에 이어 2등 국민이 되는 비운을 맞이할 뻔했다.

그러나 한국인은 특별했다. 일제 수탈 36년과 625전쟁의 참상을 딛고 일어섰다. 삼성의 매출액은 일본 전체 전자업체보다 많다. BTS, 블랙핑크는 빌보드를 K팝으로 장식하고 있고, 넷플릭스에서 K드라마가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다. 영화 <기생충>을 통해 K영화의 진면목을 보여줬고, K웹툰은 전 세계에서 새로운 플랫폼으로 ‘싹쓰리’ 하고 있다. 이런 한류의 빅뱅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필연이다. 한류는 한국인이고 한국인은 바로 한글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지금 현존하는 모든 문자 40여 개 중에서 최고이다. 메릴랜드 대학 언어학 교수 로버트 램지는 “한글은 세계의 알파벳이고 한글보다 뛰어난 문자는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실제로 한글은 제작자, 반포일, 창제 목적이 알려진 유일한 문자이다. 한국인의 위대한 창조성은 우리 피에 흐르는 한글 DNA 덕분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창조성은 다른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미국이 위대한 것은 문화의 용광로(melting pot)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타문화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에 이웃인 중국과 일본의 문자는 지극히 폐쇄적이다. 예컨대 우리는 외국 영화를 자막으로 보는 것을 선호하는데 반해 중국과 일본은 더빙으로 녹음된 것을 선호한다. 중국어와 일본어는 읽는 속도가 느리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한글 자체가 문화의 용광로이다.

중국과 일본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갈라파고스 문화’로 전락하고 있다. 자기 문화만 즐기고 사랑하는 ‘나르시스 문화주의’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고 있다. 이 비극은 그들의 문자에서 기인한다. 그들이 한류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한글을 차용해 쓰는 것이다. 한글의 위대함을 일찍이 알아본 호머 헐버트 박사는 위안 스카이 중화민국 대총통에게 한글 사용을 권유하기도 했다. 한자 외에도 히라가나와 가타가나의 두 가지 표음문자를 사용하는 불편 끝판왕 일본에게도 제안했다. 돌아온 것은 ‘망한 나라(조선)의 문자’를 쓸 수 없다는 냉대와 조소였다. 아마 앞으로도 이들은 세계 최고 문자를 영원히 외면할 것이다. 시기와 질투는 영혼을 파괴하는 법이다.

솔직히 우리로서는 다행히 아닐 수 없다. 14억 인구의 대국과 세계 3위 경제대국이 ‘한글’까지 장착한다면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가 달린’ 격이다. 그러면 세계 패권이 미국에서 이들 국가로 급격하게 이동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 여하튼 호랑이는 아니지만 우리에게만 날개가 달렸다. 단언컨대 앞으로 할리우드와 넷플릭스, 웹툰에 한류가 넘쳐 흐를 것이다. 빌보드, 그래미,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등의 시상식에 한글로 들썩거릴 것이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일제의 조선 식민지화는 ‘유치원생이 대학원생을 가르치려는 우(愚)’라 할 수 있다.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이 성공했다면 우리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셈이다. 지금 수십억 명의 인류가 즐기는 한류라는 지상 최고의 행복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일본인은 앞으로 최소 100년간은 전 인류 앞에 사죄하고 또 사죄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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