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명의신탁이란 부동산 소유자(신탁자)가 대외적으로는 마치 타인(수탁자)이 부동산 소유자인 것처럼 소유권이전등기를 하나 대내적으로는 신탁자가 실질적인 소유권을 행사하는 경우를 말한다. 지난 1995년 시행된 부동산실명법은 명의신탁약정과 이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물권변동의 효력을 무효로 정하고 있으나, 여전히 명의신탁은 조세를 포탈하거나 법령에 따른 각종 제한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부동산실명법은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수탁자 명의의 등기를 마친 신탁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수탁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이에 더불어 신탁자에게는 부동산 가액의 30% 한도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동광 민경철 대표 변호사는 “부동산실명법이 시행되자 수탁자가 형사처벌에 대한 신탁자의 두려움을 악용하여 신탁부동산을 임의 처분하는 사례들도 다량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 신탁자는 수탁자에게 어떤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민경철 변호사에 따르면 종래에 대법원은 “수탁자가 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보아 수탁자가 그 명의로 신탁된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면 신탁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해 왔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은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사이에 무효인 명의신탁약정 등에 기초하여 존재한다고 주장될 수 있는 사실상의 위탁관계라는 것은 부동산실명법에 반하여 범죄를 구성하는 불법적인 관계에 지나지 아니할 뿐 이를 형법상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수탁자는 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지 아니하여 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여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한 바,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던 기존의 판례들을 변경 및 폐기되었다.
위와 같이 수탁자가 신탁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신탁부동산을 임의 처분하더라도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탁자는 수탁자에게 아무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일까. 법무법인 동광 김기석 변호사는 “대법원은 횡령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았던 위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한 이후 위 전원합의체 판결이 ‘명의신탁관계에서 신탁자의 소유권을 보호할 수 없다는 취지로 볼 수는 없다’면서 ‘수탁자의 신탁자에 대한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즉 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임의 처분하면 형사상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지만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한다는 것이다”고 설명하며 “일반인의 관점에서 형사상 범죄에 해당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민사상 불법행위에는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논리가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형사사건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었더라도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은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예컨대 경찰관이 총기를 사용하여 범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안에서 업무상과실치사죄는 성립하지 않았지만, 총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범인을 제압할 수 있었던 사정에 따라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은 인정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기석 변호사는 “요컨대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수탁자 명의의 등기를 마칠 경우 신탁자와 수탁자는 모두 처벌된다. 나아가 수탁자가 신탁자의 동의 없이 신탁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할 경우 수탁자는 처벌받지 않지만 신탁자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부담한다. 그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는 임의 처분한 부동산의 시가 상당액이 될 것인 바, 결국 수탁자는 부동산을 임의 처분하여 얻은 금전적 이익과 그로부터 발생한 이자, 지연손해금 등을 신탁자에게 전부 배상해야 한다. 그러나 당초에 명의신탁약정을 체결하지 않았다면 신탁자든 수탁자든 관계 법령상 책임을 부담할 일이 없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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