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03.29(금)
美·EU vs 中·러…에너지 안보가 촉발한 신냉전
[비욘드포스트 조동석 기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공급망 교란은 주요국들의 에너지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구축된 협력 관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러시아산(産) 화석연료 독립과 친환경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자국 내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주요국에서 새롭게 구축되는 에너지 공급망은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에 관련 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와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오유진 연구위원의 ‘경제안보 시대, 새로운 에너지 공급망의 구축’ 보고서에서다.

경제안보 부상과 에너지 공급망 변화

미 트럼프 행정부 때 촉발한 미중 무역 갈등이 에어 코로나 팬데믹과 러-우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서방 및 민주주의 국가 對 중·러 및 권위주의 국가 간 진영화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

주요 국가들은 에너지, 첨단 기술 제품, 식량 자원, 핵심 광물 등 경제적·전략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안보 품목들에 대하여 동일 가치를 공유하는 경제블록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새롭게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유·가스·석탄 등 에너지 제품은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을 뒷받침하는 필수 요소로서 적정 가격에 공급 차원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안보 논리가 중요하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공급망 교란은 각 국의 에너지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문제로 부상했으며, 오랫동안 구축된 협력 관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에너지 교역 네트워크는 공급자인 중동·미국·러시아가 수요처인 중국·유럽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러-우 전쟁으로 러시아-유럽 간 연결이 약화되었고, 유럽은 미국과 중동에서 에너지 도입을 늘리면서 각 지역 간 연결이 강화되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으로 향하던 에너지를 중국과 인도로 돌려 맞대응 중이다. 중립적 공급처로서 전략적 가치가 급상승한 중동은 미국과 일정 거리를 두면서 고유가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공급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주요 수요처 중 하나인 인도는 미국과 중·러 사이에서 비동맹 중립외교 정책을 강화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유럽, 러시아産 화석연료 독립과 친환경 전환 동시 추진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은 단기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가스 부족 및 전력난에 대응하고 있다. EU는 지난 7월 에너지 장관회의에서 내년 3월까지 가스 소비량을 15% 감축하는데 합의했으며, 겨울철 난방 수요와 러시아 공급 중단에 대응하기 위해 천연가스와 석탄을 최대한 비축하고 있다.

또한 영국, 독일 등에서는 폐쇄할 예정이었던 노후 석탄 및 원자력 발전소도 재가동하고 있다. 독일은 에너지 가격 부담 완화를 위해 2023년 1월부터 가정용 및 산업용 전력가격 상한제를 도입할 계획이며, 2월부터는 가스가격 상한제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EU는 지난 5월 러시아産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방안으로 REPower EU 계획을 발표했다. 에너지 위기로 인해 단기간 화석연료 사용이 늘었지만,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변함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에너지 절약을 비롯해 러시아産 화석연료 독립을 위해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고, 에너지 공급망을 다변화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 특히 2030년 전체 에너지 소비 중 재생에너지 비중을 기존 40%에서 45%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무게중심의 이동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천연가스의 탈(脫)러시아를 위해서는 노르웨이, 아제르바이잔 등 대체 공급처와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 중동, 이집트, 이스라엘 등으로부터 LNG 수입을 늘리는 등 시장다변화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노르웨이-폴란드, 프랑스-독일, 프랑스-스페인 간 가스관을 신설하여 역내 상호안정성을 개선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미국, IRA로 자국 내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 구축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태양광, 풍력발전은 가스 발전보다 핵심 광물 사용량이 약 6~13배 많다. 때문에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에너지 안보라는 전통적 요소뿐만 아니라 친환경 에너지를 이용하는데 필요한 광물과 소재, 제조 역량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지난 8월 시행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새롭게 자국 내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IRA에서는 과거 재생에너지 발전 부문에 제한되었던 지원 범위를 넘어, 첨단제조 생산 세액 공제(AMPC, Advanced Manufacturing Production Credit) 법안을 도입하여 친환경 에너지 설비 제조까지 지원을 확대하였다. 미국 내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배터리에 대한 소재·부품과 주요 광물을 생산하는 기업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해 보다 안정적인 생산 기반이 갖추어지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통해 친환경 에너지 안보를 확보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비동맹 참여를 최소화하고, FTA 체결국 등을 우대하는 방식으로 경제블록화를 이끌고 있다. 특히 태양광 제품은 중국산에 대한 추가 관세 및 쿼터 조치를 시행함과 동시에 신장지역 제조품과 부품을 사용한 제품 수입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면서 적극적으로 공급망의 脫중국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 구축은 한국의 기회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2.8%에 달해 공급차원에서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이다. 이로 인해 지난 수 십 년간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노력을 지속하여 원유, LNG, 유연탄 등 주요 에너지원의 국가별 수입 비중을 분산시켜왔다.

원유의 경우 2016년 86%였던 중동 수입 비중은 2021년 60%로 감소했고, 미주, 아시아 등의 비중이 확대되었다. LNG도 카타르, 호주, 미국, 말레이시아 등으로 수입국이 다변화되어 있으며, 장기 계약 중심으로 맺어져 있어 도입 차질에 대한 우려도 낮은 편이다.

오 연구위원은 “한국은 태양광, 원자력 등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수소에 대한 투자도 선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적극적인 에너지 전환과 함께 관련 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와 체계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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