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千글자]...에어하라](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7290759430698546a9e4dd7f220867377.jpg&nmt=30)
그런데 요즘 직장은 물론 공공시설, 시내버스, 심지어 가정에서까지 에어컨을 둘러싼 갈등이 심심찮게 벌어집니다. 종일 냉방이 잘 되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은 한기를 느끼며 카디건을 겹쳐 입는데 비해 외근을 마치고 돌아온 직원은 사무실이 왜 이렇게 덥냐며 에어컨 설정온도를 낮춥니다.
또 개인마다 쾌적함을 느끼는 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냉방(겨울엔 난방) 온도를 놓고 작은 시비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의 에어컨 설정온도는 22~27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출렁거리기 일쑤입니다. 이럴 때 보통은 사무실에서 제일 높은 보스가 ‘온도권력’을 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생겨난 말이 ‘에어하라’입니다. 에어컨(air conditioner)의 ‘에어’와 괴롭힘을 뜻하는 영어 허래스먼트(harassment)의 일본식 표현 ‘하라’를 붙여 만든 신조어인데 직장상사가 온도를 자기한테 맞춰 놓고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뜻입니다. 냉방온도 갈등에서 시작된 이 말이 요즘은 직장에서 세대차이, 젠더갈등, 위계문화, 노동환경 등으로 의미가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시내버스에서도 종종 다툼이 벌어집니다. 덥다고 에어컨을 세게 틀어달라는 승객이 있는가 하면 춥다며 에어컨 온도를 높이라고 요구해 운전기사만 애꿎게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아마도 버스 실내온도를 지배할 만한 확실한 ‘보스’가 없어서 ‘에어하라’가 자리를 잡지 못했나 봅니다.
하지만 우리집에서는 ‘에어하라’가 확실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갱년기 후유증을 몇 년째 떨어내지 못한 아내는 수시로 에어컨을 틀어댑니다. 특히 잘 때는 발바닥 끝부터 열이 올라온다며 심하게 온도를 낮추는 바람에 여름에 이불이 필요 없는 내가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입니다. 결국 에어컨 리모콘을 가진 자가 그 집단의 권력자인데 우리집은 확실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성별, 나이, 근육량 등 신체특성에 따라 개인이 느끼는 쾌적한 온도는 다르기 때문에 한 공간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온도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또 같은 사무실에서도 에어컨 위치와 창문과의 거리에 따라 2~3도씩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어하라’는 작은 불편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권력구조, 조직문화, 성인지 감수성 같은 문제도 깊이 얽혀 있습니다. 결국 에어컨 온도 갈등을 완벽히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다.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 배려하며 여름을 견디는 수밖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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