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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이혼의 진화

입력 2025-08-20 08:04

[신형범의 千글자]...이혼의 진화
우리 사회에서 이혼은 이제 더 이상 화젯거리도, 감춰야 할 치부도,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데 걸림돌도 아닙니다. 이혼이라는 선택지가 아예 없던 시대를 살았던 내 위 세대 어른들도 결혼이 늦어지는 자식이나 손자에게 “결혼? 일단 해 봐, 아니면 이혼하면 되지”라고 말할 정도로 ‘일상의 하나’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변화는 최근 몇 년 사이 미디어에서 먼저 감지됐습니다. 인생의 오점으로 여겼던 이혼 경력을 공개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짝짓기 프로그램도 여럿 볼 수 있습니다. 이혼이 흔해졌다고는 하지만 이혼 사유를 밝히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대부분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들을 털어놓습니다. 참고로 가장 많은 이혼사유는 성격차이, 경제문제, 배우자 부정 순이지만 이혼전문 변호사들의 통계와 실무에서 체감적으로 느끼는 이유는 ‘불륜’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합니다.

어쨌든 개인적인 흠결이나 과실 때문에 이혼했다면 두 사람 사이는 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지 않아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이젠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헐리웃 스타일’처럼 이혼 후에도 자연스럽게 연락하고 만나는 관계도 많아졌습니다. 이혼을 불행의 흔적이나 증거로 인식하기보다 다른 생활방식의 하나로 보게 된 것입니다.

한 유명 방송인이 몇 개월 전에 이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밝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동안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공개하고 자신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재미있게 털어놓았기 때문에 충격이 컸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가 이혼한 이유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누군가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좀 다르게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이혼을 선택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가족을 이루는 환경은 달라졌지만 자녀는 잘 지내고 있고 전 배우자의 가족과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은 신선했습니다. 이 말은 결혼과 가족의 개념이 전통적 통념에서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선언 쯤으로 들렸습니다.

그는 “전 배우자와 남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에게 진짜 우정이 생겼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사람의 모습이 다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이혼 서사’가 자리잡을 필요가 생겼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듯했습니다. 다른 속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정면돌파’는 모든 이혼을 실패로 인식하고 피해와 가해의 이분법에 가두거나 불행과 동정의 대상으로 비추는 현실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또 다른 교훈 하나. 적절한 거리를 두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가치가 보인다는 깨달음입니다. 이게 가족에게도 적용된다면 바로 그 ‘거리없음’ 때문에 생겨나는 숱한 가족 간의 잔혹사를 다시 볼 수도 있습니다. 같이 살거나 같이 살지 않거나 어떤 형태로든 가족을 선택하고 또 조율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기존의 가치관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남의 가족에 대해 말을 얹기보다 우리 가족은 어떤 거리가 적절한지 탐색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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