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명의 서로 다른 시선, ‘한인미술’을 넘어 세계미술과 마주하다

이 질문은 이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들은 전통과 현대, 이주와 정착, 기억과 현실,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오가며 각자의 조형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뉴욕은 이러한 서로 다른 시선이 가장 치열하게 만나고 교차하는 도시다.
뉴욕한인미술협회(Korean-New York Artist Association)가 오는 9월 27일부터 10월 3일까지 맨해튼 살마군디 클럽(Salmagundi Club) 스카이라이트 갤러리에서 개최하는 2026 정기전 《Intersecting Gazes: 교차하는 시선》은 바로 그 지점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는 협회 회원과 초대작가를 포함해 75명이 참여한다. 중요한 것은 숫자보다 그 안에 존재하는 ‘75개의 시선’이다.
같은 한국적 뿌리를 가지고 있더라도 작가들이 경험한 시간과 공간은 서로 다르다. 한국에서 성장해 뉴욕으로 건너온 작가가 있는가 하면, 오랜 이민 생활 속에서 두 문화의 경계를 경험한 작가도 있다. 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업하거나 동시대 국제미술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온 작가들도 있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하나의 ‘한국미술’을 규정하기보다 한국미술이 얼마나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한국적인 것’을 설명하는 시대에서 벗어나다
과거 해외에서 열리는 한국미술 전시는 종종 ‘한국적인 미’를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 전통적인 소재와 색채, 정체성을 통해 한국을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미술에서 한국 작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을 반복해서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예술언어로 세계와 직접 대화하는 일이다.
《교차하는 시선》이라는 제목도 이러한 변화를 상징한다.
‘교차’한다는 것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기억, 세대와 미학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그 실험이 가능한 가장 상징적인 장소 가운데 하나다.
케이트 오 뉴욕한인미술협회 회장은 “뉴욕은 세계 각국의 문화와 다양한 시선이 끊임없이 만나고 교차하는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라며 “이번 정기전이 회원 작가들이 축적해온 창작의 성과를 넘어 한국미술의 역량과 가능성을 더욱 넓은 관객에게 알리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1993년부터 이어온 한인미술의 플랫폼
1993년 창립된 뉴욕한인미술협회는 현재 약 70명의 회원 작가가 활동하고 있다. 뉴욕과 뉴저지를 중심으로 한인 미술가들의 창작과 교류를 지원하면서 한국미술과 뉴욕 미술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이어왔다.
해외 한인미술단체의 의미도 이제 달라질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낯선 도시에서 한국 작가들이 서로 의지하고 활동할 수 있는 공동체적 기반이 중요했다면, 오늘날에는 그 공동체를 넘어 현지 미술계와 어떻게 연결되고 국제적인 담론 안으로 어떻게 진입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정기전이 맨해튼의 유서 깊은 예술기관인 살마군디 클럽에서 개최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시장을 단순히 작품을 거는 장소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국계 작가들과 뉴욕의 관객 및 문화예술계가 만나는 하나의 ‘접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75명의 작가, 하나의 정답 대신 75개의 질문
이번 전시에는 케이트 오, 정재건, 김민, 윤미경, 권효빈, 장수영, 김홍미, 김호봉, 이상복, 김은정, 이진숙, 정승진, 헤더김, 아그네스우, 이인숙, 천석필, 원효정, 조수정, 배지민, 전효진, 이난호, 권지니, 이민경, 윤혜영, 최요셉, 박은영, 에리카김, 오현영, 문희숙, 조광렬, 유미자, 김행자, 장성희, 오관진, 민경훈, 최영관, 이경숙, 김현미, 김수지, 신종석, 이고은, 크리스틴서, 김사라, 주옥근, 김종혁, 이다현, 조희정, 하미드 가하리 등 협회 작가들이 참여한다.
여기에 임수영, 김남경, 김경아, 임개화, 아넬리 지론딘, 엄재국이 초대작가로 합류한다.
서로 다른 세대와 경험, 장르를 지닌 작가들이 한 공간에 모인다는 것은 ‘한국미술은 이것이다’라는 하나의 답을 제시하기보다 수많은 질문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에 가깝다.
한국이라는 뿌리는 작가에게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가. 이주와 정착의 경험은 작품 속에서 어떻게 변환되는가. 한국계 작가라는 정체성은 세계미술 안에서 경계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출발점인가.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질문들이다.
△ 이제 ‘한인미술’에서 ‘세계 속 한국미술’로
한국미술의 국제화는 해외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가 보고, 누구와 만나며, 어떤 비평과 기록이 남고, 그 관계가 다음 전시와 창작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결국 해외전시의 성과는 작품을 얼마나 많이 보여주었느냐보다 새로운 관계와 담론을 얼마나 만들어냈느냐에 달려 있다.
그 점에서 뉴욕한인미술협회의 역할 역시 단순한 회원전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한국계 작가들이 뉴욕 미술생태계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현지의 작가·비평가·큐레이터·관객과 관계를 확장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할 때 ‘한인미술’이라는 이름은 지역 공동체의 범주를 넘어 국제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케이트 오 회장 역시 “서로 다른 경험과 예술적 시선을 가진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협회가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라며 이번 전시가 작가와 관람객, 다양한 문화예술계가 교류하는 열린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미술의 세계화는 한국을 떠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언어로 질문하고, 다른 문화의 시선과 마주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Intersecting Gazes: 교차하는 시선》은 75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정기전 이상의 질문을 던진다.
뉴욕에서 한국미술은 어떻게 읽힐 것인가. 그리고 이제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지 모른다. 한국미술은 뉴욕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세계미술과 어떤 새로운 대화를 시작할 것인가. 뉴욕한인미술협회의 2026년 정기전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현장이 될 것이다.
전시 :《Intersecting Gazes: 교차하는 시선》
기간 : 2026년 9월 27일~10월 3일
오프닝 : 9월 30일 오후 6시
장소 : Salmagundi Club Skylight Gallery, 47 Fifth Avenue at 12th Street, New York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bp_kmh@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