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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그림을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입력 2025-08-14 08:43

[신형범의 千글자]...그림을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미술사를 전공하는 딸은 요즘 석사논문을 준비하느라 도서관과 박물관, 각종 미술관과 전시들을 쫓아다니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공감이라도 해 주자 싶어 미술과 관련한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려 오곤 합니다. 최근 본 건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미술을 말이나 글로 설명하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말하기 위해 여러 작가들의 말을 인용한 걸 보고 웃음이 났습니다. “화가는 그림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들을 깊이 불신한다”(헨리 제임스), “한 예술형식을 다른 수단으로 설명한다는 건 무모한 행위다. 세상 모든 미술관에 대해 해설이 필요한 그림은 단 한 점도 없을 것이다. 미술관 안내서에 설명이 많은 그림은 그만큼 좋지 않은 그림이다”(플로베르), “말은 필요 없다. 흥, 흠, 이야, 하고 나면 그걸로 전부다”(드가), “화가들은 혀를 잘라야 해”(마티스).

그러면서 ‘미술 같은 예술형식을 언어로 표현하는 건 불가능하고 명화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그림 앞에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정리했습니다. 물론 이 책의 결론은 아닙니다. 그저 예술을 다른 예술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이토록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미술에 문외한이고 그림보다 문자텍스트가 친숙한 나로서는 일견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리학에서 발달이론을 구축한 옛 소련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는 “사고는 언어로 표현되는 게 아니라 언어로 완성된다”고 했습니다. 좋은 생각이나 행위의 결과는 그걸 말이나 글에 담아 표현함으로써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는 뜻으로 이해했는데 실험과 관찰, 사유의 결과가 함축된 말로 보입니다.

언어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이 갖고 노는 레고블록과 비슷한 속성이 있어서 단어를 고르고 상황에 맞춰 끼워보고 해체하고 다시 결합하는 반복행동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말이 없으면 생각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말이 불안정하면 존재 자체가 흔들립니다. 이를테면 박근혜 최순실 윤석열 김건희 김영선 명태균… 이런 사람들의 전화통화나 인터뷰를 보면 어딘가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주어와 서술어의 관계가 일치하지 않고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는 지시대명사가 유독 많습니다. “곧 거시기할 거니까 거기 가서 거시기 좀 잘 해보라고 거시기 혀 봐”를 이해하는 게 차라리 쉽습니다.

언어를 통해 논리적으로 사유하고 정신세계를 차분하게 가다듬으면 존재는 세상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자기 자리를 쉽게 찾아갑니다. 반면 다듬어지지 않은 사유체계 위에 권력의지와 사리사욕이라는 본능만 작동한다면 설명할 수 없는 황당한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게 됩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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