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재미있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비만치료제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비행기 탑승객들의 체중이 줄어 항공사들은 연료비 절감이 가능해졌다는 겁니다. 올해 최대 약 8500억 원 정도를 아낄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보고서는 승객들의 평균 체중이 10% 줄면 항공기의 이륙 중량은 약 2%(1450kg) 정도 가벼워져 연료비를 1.5%까지 아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덕분에 항공사들의 주당순이익률(EPS)을 최대 4%까지 높일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연료비가 전체 운영비의 20% 가까이 차지하는 항공사 입장에선 그야말로 뜻밖의 횡재입니다.
나비효과는 또 있습니다. 제약업계를 넘어 글로벌 식품시장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체중 감량 과정에서 감소한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 고단백 식품을 찾는 수요가 급증하는 것도 예상하지 못한 비만치료제의 후폭풍입니다. GLP-1 치료제로 감량한 체중의 약 15~40%는 근육을 포함한 체지방 감소에서 비롯됩니다. 이때 손실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한 새로운 시장이 생겨났다는 겁니다. 과거 치즈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로 여기던 유청(whey)은 단백질 함량을 높이는 핵심 원료인데 글로벌 식품 기업들이 앞다퉈 확보에 나서는 황금원료가 됐습니다. 한동안 헬스보충제로 사용됐지만 비만치료제 보급을 계기로 음료부터 빵, 과자에 이르기까지 전 식품의 필수 첨가물로 부각했습니다. 실제로 유청 단백질 가격은 1년 새 세 배나 뛰었습니다.
반면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는 우울한 업계를 찾아냈습니다. 주류 회사들은 위고비 같은 GLP-1계열 비만치료제를 이용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10명 중 6명 꼴로 약물 투여 후 술을 덜 마신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비만치료제는 식욕만 줄이는 게 아니라 음주 의욕까지 떨어뜨린다는 겁니다. 술을 마시면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며 기분이 좋아진다고 느끼는데 비만치료제를 사용하면 뇌의 보상중추에 작용해 술을 마셔도 예전만큼 즐겁거나 짜릿한 기분이 들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보고서는 2035년까지 미국 전체 주류 소비량이 최대 5%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결국 비만치료제가 주류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위협 요소라는 거지요.
비만 치료를 위한 약 하나가 항공사의 배를 불리고 단백질 시장을 키우는가 하면 주류 회사의 성장을 꺾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세상 일 참,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습니다. ^^*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sglee640@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