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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성 개인 비엔날레’, K-컬처 시대 한국미학의 새로운 선언

김민혁 기자

입력 2026-07-14 12:45

사진=송림아트센터 제공
사진=송림아트센터 제공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예술의 역사는 작품을 만드는 역사이면서 동시에 전시 형식을 새롭게 만들어 온 역사이기도 하다. 19세기 살롱전은 국가가 예술을 선택하는 제도였고, 20세기 개인전은 예술가의 독립성과 개성을 확립한 제도였다. 이어 비엔날레는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계와 연결하는 국제 플랫폼으로 성장하며 현대미술의 중심 제도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1세기의 문화 환경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비엔날레는 반드시 국가와 도시만이 만들 수 있는가. 한 명의 예술가가 하나의 비엔날레가 될 수는 없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전시 형식의 변화가 아니라 현대미술의 주체를 다시 묻는 질문이다.

최근 나주 송림아트센터에서 펼쳐지고 있는 금보성의 프로젝트는 이러한 질문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외형은 개인전이지만, 내용은 전통적인 개인전의 범주를 넘어선다. 회화와 설치, 공간 연출은 물론 창작 과정의 공개, 작품 제작 전 과정을 기록하는 아카이브, 한글회화를 체계화하는 학술 연구, 출판, 교육, 국제교류가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전시는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장소가 아니라 창작과 연구, 기록과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는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예술가 개인의 작업이 도시와 학문, 공동체를 연결하는 하나의 생태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금보성 개인 비엔날레(KIM BO SEONG Personal Biennale)’라는 명칭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새로운 전시 모델을 설명하는 하나의 개념으로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 ‘한글’이 있다는 사실이다.

금보성이 40여 년 동안 탐구해 온 한글회화는 문자를 장식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다. 한글의 생성 원리와 세종의 철학, 문자 이전의 기호성과 현대 추상의 조형 언어를 연결하며 한국적 사유를 현대미술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그의 작품에서 한글은 읽는 문자가 아니라 사유하는 구조이며, 언어를 넘어 하나의 문명적 상징으로 제시된다.

여기에는 서양미학과 다른 한국미학의 본질이 놓여 있다.

서양미학이 재현과 비례, 원근법, 합리성과 개별 조형의 완결성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한국미학은 신명과 해학, 놀이와 풍류, 여백과 자연의 순환, 그리고 오방색이 만들어내는 조화의 미학 속에서 발전해 왔다. 우리 문화는 대상을 지배하기보다 함께 어우러지는 질서를 추구했고, 완결보다 여운을, 분석보다 공감을 중시했다.

판소리의 흥, 탈춤의 해학, 농악의 신명, 강강술래의 공동체성, 윷놀이의 놀이 정신, 아리랑의 정서는 모두 이러한 한국적 미학의 연장선에 있다.

금보성의 작품 제목인 「윷놀이」, 「아리랑」, 「대한민국」, 그리고 「뿌리내리지 않은 언어(Hangeul: The Unrooted Language)」는 바로 이러한 한국 문화의 정신을 현대회화로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작품은 문자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집단 기억과 문화적 정체성을 조형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특히 ‘뿌리내리지 않은 언어’라는 개념은 한글을 영토 안에 갇힌 문자로 이해하지 않는다. 언어는 국경에 뿌리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문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한글은 대한민국의 문자이면서 동시에 세계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열린 시각언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점에서 한글은 K-팝과 K-드라마, K-푸드에 이어 K-컬처를 대표하는 시각문화의 언어가 될 잠재력을 지닌다. 지금까지 K-컬처가 음악과 영상 중심으로 세계와 만났다면, 한글회화는 한국의 철학과 미학을 세계 현대미술과 연결하는 새로운 통로가 될 수 있다.

사진=송림아트센터 제공
사진=송림아트센터 제공
금보성이 서울한강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서울과 대전, 나주를 하나의 문화 축으로 연결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울에서는 국제 담론을, 대전에서는 교육과 연구를, 나주에서는 창작과 지역공동체를 결합시키는 구조는 하나의 철학이 여러 도시를 통해 구현되는 새로운 분산형 문화 플랫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물론 ‘개인 비엔날레’는 아직 미술사적으로 정립된 제도는 아니다. 충분한 검증과 비평, 학술적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예술 제도는 언제나 기존 질서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개인전도, 비엔날레도 처음에는 하나의 실험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내용이다. 작품과 연구, 기록과 교육,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며 하나의 예술 철학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구조를 갖춘다면, 그것은 기존의 개인전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화 플랫폼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오늘 나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험은 한 작가의 전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미학이 세계와 만나는 새로운 방식이며, 한글이 K-컬처의 미래를 향해 확장되는 하나의 문화 선언이다.

비엔날레는 더 이상 도시의 이름만으로 정의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철학이 비엔날레가 되고, 하나의 언어가 비엔날레가 되며, 하나의 문화가 비엔날레가 되는 시대가 시작될 수 있다.

‘금보성 개인 비엔날레’는 그 가능성을 실험하는 하나의 제안이다. 그 제안이 앞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전시 제도로 자리 잡을지 여부는 앞으로의 실천과 미술계의 평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의 미학과 한글이라는 문화유산을 동시대 예술의 언어로 확장하려는 이 시도가 우리 미술계에 새로운 논의를 촉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실험은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bp_kmh@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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