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 상징시설과 대규모 정비사업을 둘러싼 여러 논란은 이러한 기본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국가를 대표하는 공간은 기능과 외형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국가의 상징성과 역사성, 우리 건축의 정체성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국가적 상징 공간에 걸맞은 철학보다 외형적 디자인이 앞선다면 설계는 쉽게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상징성은 화려한 형태나 장식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장소가 지닌 역사와 시민이 공유하는 기억을 설계에 녹여낼 때 비로소 공공건축의 설득력이 생긴다.
더 큰 문제는 공공성과 형평성이 핵심 가치인 재건축 사업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치미도아파트 재건축 설계안을 두고 일반분양과 임대주택이 특정 동에 집중 배치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를 두고 서울시가 추진해 온 '소셜믹스'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관할 행정기관도 해당 배치 방식이 정책 방향에 부합하는지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이 커졌다.
대규모 정비사업에서 일반분양과 임대주택의 배치 방식은 단순한 설계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주거 유형을 한 공간에 어떻게 배치하고 연결할 것인지는 도시 공동체의 통합과 직결된다.
서울시가 강조해 온 '소셜믹스' 역시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소셜믹스는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같은 단지 안에 배치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특정 주거 유형을 한쪽에 몰아넣거나 출입구와 생활 동선을 달리하면 물리적으로는 한 단지여도 생활 속 경계는 더 뚜렷해질 수 있다.
설계 과정에서는 사업성과 효율성을 고려해야 한다. 조합원과 입주 예정자의 요구도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공공지원이 결합된 정비사업이라면 도시정책과 주거복지의 취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소셜믹스를 숫자와 배치 기준에만 맞추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공동체 통합이라는 본래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
문제는 설계안 자체에만 있지 않다. 공공지원 정비사업은 공정성과 공공성을 전제로 운영되는 제도다. 논란이 생긴 뒤에도 기준 적용과 후속 검토가 충분하지 않다면 행정의 책임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규정은 존재하지만 실제 설계와 심의 과정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제도의 신뢰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행정기관은 공공성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설계사와 조합도 그 기준을 사업 초기부터 공유해야 한다. 문제가 불거진 뒤에야 설계를 손보는 방식보다 처음부터 정책 취지와 공간 구성 원칙을 함께 논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건축사의 경쟁력은 화려한 디자인이나 수주 실적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발주자의 요구를 정확히 이해하고 사회적 가치와 공동체의 이익을 설계에 담아낼 수 있는지가 진정한 실력이다. 특히 국가 상징시설과 대규모 도시정비사업은 건축가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국민과 시민 모두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이번 논의는 특정 기업이나 특정 설계안의 문제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 건축계가 공공성보다 수주 경쟁을, 철학보다 마케팅을 앞세우는 문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계기가 돼야 한다. 설계 공모와 정비사업 수주 과정에서 외관과 상품성만 부각되고 공공적 책임은 뒤로 밀리지 않았는지도 살펴야 한다.
건축이 공공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설계의 완성도뿐 아니라 공공적 책임과 윤리의식도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아야 한다. 국가 상징시설에는 시대와 공동체의 기억을 담아야 한다. 재건축 단지에는 서로 다른 주민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좋은 건축은 눈길을 끄는 외관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가치를 담아내는 철학에서 시작된다. 공공건축과 도시정비사업이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다.
※ 본 칼럼은 공개된 자료와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필자 개인의 견해이며, 본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종균 기자 jklee.jay526@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