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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이재연 박사의 '트렌드 경영'…착한 조바심

입력 2026-10-28 03:46

리더가 답을 내놓는 순간, 직원은 성장하지 않는다

글 / 이재연 경영학박사, (전) 서일대학교 이사장, (전)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사진제공=엘앤에이(주)
글 / 이재연 경영학박사, (전) 서일대학교 이사장, (전) 숭의여자대학교 교수. 사진제공=엘앤에이(주)
[비욘드포스트 이봉진 기자] 직원이 문제를 풀려고 고민하기 전에 답을 먼저 주면, 그 직원은 다음번에도 고민하지 않는다.

한 중견기업 대표가 답답함을 토로했다. "우리 직원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사소한 것까지 전부 저한테 가져와서 물어봐요.”

며칠 뒤 그 회사의 주간 회의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한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대표님, 이번 납기 건은 거래처 쪽에서……” 그러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대표의 답이 튀어나왔다. "그건 이렇게 처리해. 내가 직접 전화할게.”

두 시간 남짓한 회의 동안 이와 똑같은 상황이 몇 차례나 반복됐다. 문제의 핵심은 직원들이 결정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민하고 입을 열 '기회'조차 없었다는 데 있었다.

■ 가장 빠른 해결이 가장 어리석은 해결이 될 수 있다

리더십 코치 사비나 나와즈(Sabina Nawaz)는 관리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이러한 상태를 '유일한 해결사 함정(Sole Provider Trap)'이라 부른다. 조직 내 모든 문제가 결국 단 한 사람에게로 흘러 들어가, 오직 그 한 사람의 손에서만 풀리는 상황이다.

이 함정에 빠지는 동기는 대개 나쁜 의도가 아니다. '직원들의 업무가 이미 과부하 상태라서', '내가 직접 처리하는 편이 훨씬 빠르고 정확해서', 혹은 '실수했을 때 회사가 입을 손실이 걱정돼서' 등 모두 조직을 아끼는 선의의 판단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 선의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숨어 있다.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쉼 없이 리더가 틀어쥐고 있는 동안, 직원은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고, 처절하게 실패해 보고, 다시 수정해 나가는 성장의 과정을 통째로 건너뛰게 된다.

당장 눈앞의 일은 빨리 끝난다. 하지만 다음번에 터질 문제도, 그다음 문제도 결국 리더가 온전히 짊어져야 할 짐으로 되돌아온다. 일을 잘하는 관리자가 반드시 조직을 잘 키우는 리더가 되지는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회차에서 혼자 결정하는 경영자가 조직을 침묵하게 만든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직원들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할 기회를 빼앗긴 것이다.

■ 왜 내 손이 먼저 나가는가: 착한 조바심의 실체

이 굴레를 벗어나려면 리더 자신이 딱 몇 초만 기다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직원이 문제를 가져왔을 때, 내 입에서 '정답'이 먼저 나오는가 아니면 '질문'이 먼저 나오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그전에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내가 지금 이 문제에 손을 대려는 이유가 진정 회사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직원을 믿고 기다리는 동안의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서인가?'

현장에서 목격되는 많은 개입은 뒤쪽에서 나온다. 직원이 진짜로 틀릴까 봐서가 아니라, 직원이 헤매고 틀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시간 자체가 불편해서다. 이것이 바로 '착한 조바심'이다. 나쁜 의도가 전혀 없기에 리더 자신도 그 조바심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 이 일은 진정 누구의 것인가

모든 문제를 리더가 풀 필요는 없다. 일을 마주했을 때 두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첫째, 이 일이 잘못됐을 때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가? 둘째, 이 일을 직접 해보는 것이 누군가에게 배움이 되는가?

위험이 크고 배움이 적은 일이라면 리더가 맡는 것이 맞다. 그러나 위험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고 배움이 큰 일이라면, 직원의 경험 부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험을 쌓을 기회를 열어주고,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보와 권한을 쥐여주는 것이 마땅하다.

■ 맡긴다는 것은 손을 떼는 것이 아니다

위임을 단순히 '일을 넘기고 빠지는 것'으로 이해하면 둘 중 하나의 비극이 일어난다. 직원이 방치되거나, 결국 엉망이 된 프로젝트가 되돌아온다.

맡긴다는 것은 방관이 아니라 자율의 폭을 정하는 일에 가깝다. 어디까지는 직원 혼자 결정해도 되는지, 어디서부터는 반드시 상의해야 하는지를 시작 전에 명확히 정해둔다. 그리고 진행 과정을 중간에 들여다보되, 섣불리 '답'을 주러 들어가지 않고 꽉 막힌 지점을 함께 검토만 한다. 이후 직원의 숙련도가 올라가면 합의했던 자율의 폭을 넓힌다. 그 폭이 넓어지는 속도가 곧 그 직원이 성장하는 속도다.

■ 권한, 역량, 신뢰는 함께 와야 한다

자율성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효과를 내려면 세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다.

권한: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는 묻지 않고 스스로 결정해도 된다는 실질적인 재량이다. 결정권 없는 책임은 자율이 아니라 부담이다.

역량: 정확한 판단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 그리고 자원이다. 전후 맥락을 모르는 사람에게 결정을 넘기는 것은 자율이 아니라 방치다.

신뢰: 직원이 한 번쯤 틀려도 묵묵히 기다려주는 리더의 시간이다.

이 중 가장 실천하기 어려우면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이 신뢰다.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자율성은 즉각 의미를 잃는다. 권한 없이 역량만 주면 직원은 답답해지고, 역량 없이 권한만 주면 대형 사고가 나며, 신뢰 없이 둘 다 주면 두려움에 아무도 그 권한을 쓰지 않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그 대표는 그 뒤로 한 가지 규칙을 정했다고 했다. 직원의 보고가 끝나면 무조건 속으로 셋을 세고 나서야 입을 연다는 것이다.

대단한 변화가 아니다. 다만 놀랍게도 그 침묵의 3초 동안, 직원이 먼저 말을 잇는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고 했다. "대표님, 제 생각에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요.” 직원들은 이미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동안 그 답을 세상에 꺼내놓을 3초의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좋은 리더는 혼자서 모든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자신이 직접 나서서 풀어야 할 문제가 윗선까지 오지 않도록 조직을 만드는 사람이다. 자율성을 준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아랫사람에게 넘기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리더 스스로가 '내가 직접 풀지 않아도 되는 문제'를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이다.

bjlee@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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