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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신 작가, 시대를 기록하고 사유하다

입력 2025-12-22 10:28

철학적 시선으로 굴곡진 한국 사회를 응시한 작업 세계

손신 작가
손신 작가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현대미술가 손신(孫信)은 동시대 한국 사회의 현실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사유’하는 예술을 지속적으로 구축해 온 작가다. 그는 회화, 사진, 영상, 드론 촬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지만, 그 작업의 핵심은 형식적 실험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는 철학적 태도와 인식의 방식에 있다.

손신의 작업은 단순한 재현이나 사건 기록을 넘어, 예술이 동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책임질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손신 작업의 출발점은 언제나 현장성(site-specificity)이다. 그는 사건을 상징화하거나 연출하기보다, 직접 현장에 존재하며 세계와 마주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는 세계를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 던져져 살아가는 존재의 경험 속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다.

이러한 접근은 하이데거의 존재론, 특히 현존재(Dasein) 개념과 맞닿아 있다. 손신에게 예술가는 외부에서 세계를 설명하는 관찰자가 아니라, 세계의 상처와 균열 속에 함께 놓인 존재다. 그의 작업은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어디에 서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지금, 여기 역사에 던진 본질에 대한 화두다.

손신 작업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드론을 활용한 하늘시점(Sky View Point)이 시점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철저히 철학적인 전략이다. 일반적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은 통제와 감시의 권력을 상징하지만, 손신은 이를 역전시킨다. 수평적 평면성과 연대를 통한 새로운 공동체사회의 철학이 작품 내면에 녹아 있다.

그의 드론기계 하늘시점은 개별 주체를 강조하기보다, 개인을 둘러싼 집단, 군중·환경·사회 구조를 전면에 드러낸다. 개인은 작아지고, 구조는 선명해진다. 이는 주체 중심적 미학에서 벗어나, 권력이 작동하는 구조 자체를 인식하게 하는 새로운 차원의 시선이다.

COVID-19-Sum-04-08-15-07 2021, Pigment Print, 162.2×108.1 cm
COVID-19-Sum-04-08-15-07 2021, Pigment Print, 162.2×108.1 cm
손신은 사건의 극적인 순간보다 사건 이후의 시간에 주목한다. 코로나19 이후의 쓰레기장과 폐허, 축제가 끝난 공간, 정치적 장면의 이면, 비극이 지나간 장소 등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풍경들은 모두 ‘이미 지나간 사건’의 흔적들이다. 지나난 흔적을 통해 그 흔적의 원인과 본질을 투명하게 들쳐낸다.

이는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과 깊이 연결된다. 벤야민이 말한 역사는 승자의 서사가 아니라, 파편과 잔해로 남은 기억의 집합이다. 손신의 작업 역시 현재를 기록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미래의 기억을 위해 현재를 저장하는 행위에 가깝다. 그의 작품은 “지금 무엇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이 시대는 훗날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10년간의 작업을 묶은 최근 발간 된 도록『AGAINST』는 굴곡진 한국 현대사회에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저항하고 침묵에 맞서는 태도를 다층적 분석과 배치를 통해서 자신만의 장르를 만든다. 그의 작품은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주장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에서 말하는, 공적 세계에서의 행위와 책임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손신의 ‘AGAINST’는 망각과 무감각, 침묵에 맞서는 태도다. 그는 선언하거나 선동하지 않으며, 관객에게 판단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작품을 통해 “당신은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시대적, 윤리적 질문을 조용히 던진다. 그는 기록과 예술의 경계에 서서, 무엇이 보일 수 있고 무엇이 말해질 수 있는지를 다시 묻는다. 이는 자크 랑시에르가 말한 ‘감성의 분할’을 재구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1962년생인 손신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뒤 문화운동에 참여했으며, 2000년 북경에서 열린 남북한 문화회담에 참석하는 등 문화예술정책과 남북 문화예술 교류에 꾸준히 관여해 왔다. 현재는 남북한 평화프로젝트와 유라시아 환경프로젝트 등을 준비 중이다.

news@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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