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이 들려주었던 결혼식 이야기가 기억난다.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그 결혼식 풍경이 왠지 모르게 생기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멍든 것 마냥 푸른 빛이 바랜 테이블 위에 조화를 보는 순간 이유를 알 것 같더라고.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꽃장식 의뢰로 한 예식장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그때 예식장 직원들이 생화와 조화를 섞어서 꽂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비용 때문에 조화를 포기할 수도 없고 조화만 쓰자니 초라해 보일까 봐 생화를 포기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결국 당장 조화를 모두 빼고 생화만 이용해 꽂으니 금방 식장의 분위기가 화사하게 살아났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화는 꽃이 아니다. 그저 꽃을 흉내 내고 있을 뿐, 꽃이었던 적도 없고 꽃이 될 수도 없다. 우리 사람들이 조화를 찾는 사람이 많다.
아무래도 한번 사두면 오래오래 두고 쓸 수 있어 비용이 적게 들고 물 주고 관리할 필요 없어 편리하다고 생각해서 일 듯하다. 조화는 최소 투자로 최대 효과를 얻으려 사용하는 것이겠지만ㄴ 조화에서 어떤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나로서 잘 모르겠다.
좀 비싸서, 좀 손이 많이 가서 '진짜 꽃'을 포기하고 조화를 선택하다니. 우리가 꽃을 선택하는 진짜 이유를 잠시 잊은 모양이다.
그 어떤 인공 향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향기와 싱싱한 꽃이 가진 에너지 등 꽃 속에서 얻는 행복감을 조화는 줄 수 없는데 말이다. 같은 색상이라도 종이에 칠해진 색과 꽃의 색을 봤을 때 스트레스 해소 같은 긍정적인 감정 변화가 꽃을 봤을 때 훨씬 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반려동물을 한번 생각해보자.
생명 있는 것과 함께 한다는 건 당연히 번거로울 수밖에 없다. 밥 먹이고 놀아주고 목욕시키고 아프면 병원까지 데려가야 하니 돈도 제법 들고 손도 얼마나 많이 가는지 모른다.
생명 있는 것들에는 번거로움이 따라오지만 또 생명이 있기에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꽃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안 가 시들어버려 새로 사려면 돈이 들고 매번 물을 갈아 줘가며 관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정성을 기울이고 시들어버리기도 하는 과정 속에 꽃을 가꾸는 기쁨이 있다.
생명 있는 것과의 교감이라는. 우리가 자주 잊곤 하는 소중한 감정 말이다.
외국 사람들은 조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조화는 죽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혼식장, 장례식장, 레스토랑, 가정집 등 항상 살아있는 꽃이 놓인다.
어찌 됐든 나로선 요즘 사람들이 그저 비용과 편리성 때문에 쉽게 조화를 쓰는 것이 아쉽다. 생명력 없는 조화는 사람이나 공간에 에너지를 전하지 못하고.오히려 기운을 빼앗아 간다.
'죽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선택 기준이 항상 돈과 비용만 생각하는데 길들여지다 보면 아름다움을 즐기고 생명을 사랑하는 우리의 감성 또한 무너지고 만다.
줄기는 잘라 꽃병에 꽂아 놓은 꽃도 조금씩 자란다. 살아 있기 때문이다. 문을 여는 순간 공간을 가득 채운 향기를 느끼고,
그 싱싱한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작았던 꽃봉오리가 만개하고 또 시들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생명의 순환을 지켜본다.
이게 바로 살아 있는 꽃이다.
돈을 좀 아끼기 위해서. 물 갈아주기 귀찮아서 '가짜'꽃을 아무리 가져다 놓아봐야 거기에는 우리가 얻는 감정도 가짜 일 수밖에 없다.
'추억이 담긴 선물은 실제 꽃과 같아요. 그러나 그건 단지 모조품입니다. 마치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모조품인 것처럼... 내게 준 종이 장미처럼 당신의 마음에는 사랑이 없군요'
<종이 장미>의 가사 중 일부다. 그저 유혹하고 즐기기 위한 사랑이 진짜 사랑일 수 없듯이, 꽃잎의 화려한 색과 모양만 흉내 낸 조화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진짜 꽃이 될 수 없다.
얼른 어디에서라도 꽃 한송이 생화를 사보자.
잠시 나마 힐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플로리스트 제프리 킴
- 2003-2006년 : 런던 제인파커 플라워 Creative team 플로리스트 활동
- 2006-현재 : '제프리플라워' 설립 후 제프리킴 플로리스트 활동
플로리스트 제프리 킴 news@beyond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