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조는 1068년 북송에서 사신으로 왔다가 고려에 눌러앉게 된 수(修) 할아버지로 성은 신(愼)이고 본관은 거창(居昌)이며 나는 양간공파 31대손입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한국인의 이름은 대개 성씨 한 글자와 이름 두 글자로 성명(姓名)을 구성합니다. 물론 독고 황보 선우 같은 두 글자 성도 있고 이름이 한 글자부터 세 글자 이상인 경우도 많습니다.
성씨는 아주 오래 전부터 끊기지 않고 이어 내려온 조상과 나의 아이덴티티이며 ‘과거’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형제와 사촌, 육촌들과 이름자를 공유하는 항렬이 있습니다. 돌림자라고도 하지요. 항렬은 동시대를 더불어 살아가는 ‘현재’를 의미합니다. 마지막 한 글자는 이렇게 성장했으면 또는 이런 삶을 살았으면 하는 희망을 담아 짓는 ‘미래’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이름 석 자엔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겨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언제부터 성을 쓰기 시작했을까요.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지만 공식적인 기록은 백제 근초고왕, 고구려 광개토왕, 신라 진흥왕 때 이르러서야 왕족과 귀족들의 성씨가 처음 등장합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망하고 고려 건국 때까지도 일부 왕족과 호족들을 제외하면 일반 백성은 성을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의 불교 순교자 이차돈이나 장군 이사부는 ‘이’씨가 아니라 이름이며 후세부터 역순해 계산하면 이들의 성명은 박이차돈 김이사부가 됩니다. 이 때도 사람들은 성이 없거나, 있더라도 쓰지 않았거나, 성이 있는 경우라면 후대에 역산해서 붙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신라의 왕족들인 ‘박, 석, 김’도 다 역산해서 붙인 성씨입니다.
요즘이야 귀화인도 많고 희귀한 성씨가 많지만 우리나라 전통 성씨는 286개로 인구에 비해 종류가 아주 적은 편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성명 시스템의 종주국인 중국만 해도 성의 종류가 2만4천여 개, 일본은 13만~30만개로 추산합니다. 대신 한국은 성의 종류는 적지만 같은 성이라도 본관을 연결해서 구분하는 독특한 성씨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고려 때까지는 모계 성을 따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왕의 이름과 겹치는 글자를 피하는 것을 ‘피휘(避諱)’라고 하는데 자신의 성이 왕의 이름과 같은 글자면 어머니나 외할머니의 성을 가져다 쓰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이를테면 고려에 ‘흔’씨가 제법 많았는데 지금의 ‘예천 권’씨는 고려 때 피휘 때문에 성을 바꾼’ 예천 흔’씨의 후손들입니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서 모든 백성이 성을 쓰게 됐고 또 족보까지 갖게 됐는지는 다음 편에 계속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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