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千글자]...술이 없어진 자리](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8080821000103946a9e4dd7f220867377.jpg&nmt=30)
‘술 좀 줄이세요’ ‘이 참에 아예 끊으시죠’ 몸에 약간이라도 문제가 생겨 병원에 가면 흔히 듣는 말이지만 의사의 권고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별로 못 봤습니다. 술을 누가 건강하려고 마시나요. 일상에 쌓인 울분을 풀고 지인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더욱 즐겁게 하려고 마시는 게 술 아닌가요.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술 시장’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층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겁니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체감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세 이상 국민 1인당 순수 알코올 소비량을 보면 2015년 9.8L에서 2021년 8.0L로 20% 가까이 줄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국 음주문화의 병폐로 지적되던 ‘고위험 음주’, 즉 만취할 때까지 마시는 폭음이 줄었다는 겁니다. 전체적인 음주량도 줄었지만 20~29세 연령대 폭음 비율이 최근 10년 사이에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겁니다.
공고하던 음주문화가 청년층을 중심으로 왜 이렇게 바뀐 걸까요. 술은 원래 공동체적 행위입니다. 기원으로 보면 농경사회의 제례에서 유래했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단체회식이나 사교, 유흥의 단골 메뉴입니다. 혼자 마시는 술은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의 징조로나 다뤘지 보편적인 음주문화는 아닙니다. ‘혼밥’보다 더 처량하게 여겨지는 게 ‘혼술’이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진 겁니다. 한국 사회활동의 상징이던 회사 회식조차 더는 음주를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회식이 선택사항으로 바뀌었고 술을 즐기지 않는 상급자가 늘면서 음주 대신 좋은 식사나 문화이벤트로 대체되는 게 흔해졌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는 과거의 회식문화 자체를 없애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공동체 행위로서의 음주문화는 설자리가 좁아졌다는 얘기입니다.
여가문화의 변화도 한몫 했습니다. 별다른 놀이문화가 없던 시기에는 여럿이 뭉쳐 뭔가를 해도 마무리는 술자리였습니다. 축구를 해도, 당구를 쳐도, 등산을 하고 내려와도 마무리는 항상 술이었습니다. 요즘은 다릅니다. 스마트폰에 기반한 다양한 컨텐츠가 넘쳐나고 집에서도 게임친구들을 만나면서 혼자 놀 수 있는 수단이 도처에 널렸습니다.
청춘 남녀가 짝을 찾기 위해 술집에서 헌팅하는 문화도 바뀌었습니다. 클럽이나 술집 같은 공간이 만남이나 연애로 이어지는 사교무대였다면 지금 청년들은 무대를 운동모임으로 옮겼습니다. 대표적인 게 러닝크루인데 운동을 통해 자기관리를 하는 일차적 목표에 더해 젊은 솔로들이 많이 참여하니 자연스러운 만남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음주가 독점하던 연애와 사교, 재미까지 포괄하는 문화기능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건강에도 안 좋은 음주가 줄어든 건 긍정적이지만 그만큼 사회적 교류가 감소해 그에 따른 부차적으로 나타난 현상임을 생각하면 마냥 응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방식이 해체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공동체적 윤활유로서 술이 빠진 자리에 다른 공동체의 행위를 채우지 못한다면 우리 삶은 되레 더 팍팍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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