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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포토에세이]...전등사, 강화도

입력 2025-10-13 08:27

[신형범의 포토에세이]...전등사, 강화도
강화도 전등사에서 찍었습니다. 일반 방문객을 위한 템플스테이를 비롯해 도자기 물레체험, 달집태우기, 윷놀이 같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모양입니다. 나는 불자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대학 입학, 사업 번창, 건강 기원 등 갖가지 내용이 적힌 쪽지와 기왓장 같은 것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매달리고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사람들이 그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찾는구나 싶었습니다.

행정구역을 나누고 범위를 좁히면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정족산에 정족산성이 있는데 전등사는 산성 안에 있습니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81년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는데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현존하는 한국의 절 중에서 가장 오래됐습니다.

원래 이름은 진종사였는데 전등사(傳燈寺)라는 이름은 고려 충렬왕 때 붙여진 이름입니다. 건물 따위가 낡고 헌 것을 손질해 고치는 것을 중수라고 하는데 1600년도 더 된 만큼 여러 차례 중수하고 화재로 소실된 것을 새로 짓고 하다가 현재 건물은 조선 광해군 때 중수된 것입니다.

강화도는 우리 섬들 중에서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섬입니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개성), 조선과 대한민국의 수도인 한성(서울)과 가까워 옛날부터 서쪽 바다를 막는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몽골이 침입했을 때 고려는 약 40년 동안(1232~1270) 강화도를 임시 도읍으로 정했고 청나라가 침입한 병자호란 때는 인조가 강화도로 도피하려다 실패해 남한산성에 갇혔다 항복한 적도 있습니다. 강화도는 또 유배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살려 두기는 위험하고 죽이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큰 인물들을 주로 강화도로 보냈는데 고려 희종에 이어 조선의 연산군 임해군 영창대군 광해군 등이 유배됐고 철종은 왕위에 오르기 직전까지 강화도에서 살았습니다.

근현대에 들어서면 병인양요, 신미양요, 강화도조약 등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고 6.25전쟁 이후에는 개성의 실향민들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개성의 문화를 이어오기도 해서 ‘강화도만 제대로 알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단군이 제사를 지냈다던 마니산도 강화도에 있으니 역사적 서사를 따지면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집에서 가면 30분밖에 안 걸리는데도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잘 안 갔었는데 오늘 포토에세이 덕분에 강화도를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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