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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포토에세이]...은행나무의 가을편지

입력 2025-11-17 08:24

[신형범의 포토에세이]...은행나무의 가을편지
작은 카페 안. 남자 어르신 두 분이 마주앉은 테이블에 주문한 커피를 가져온 카페주인은 테이블 옆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수어로 인사를 건냅니다. 수어로 한참 얘기 중이던 두 노인은 손동작을 멈추고 깜짝 놀랐지만 이내 환하게 웃으며 수어로 “감사하다. 수어를 잘한다”며 화답하고 ‘엄지 척’을 날립니다. 두 노인은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경기도 안산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은 “커피를 서빙할 때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아니면 맛있게 드세요’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청각장애인은 그 말을 듣지 못하는 게 속상했어요. 마음을 전하는 거라면 인사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카페에 오는 손님 누구라도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유튜브를 보며 간단한 수어를 익혔다고 말했습니다.

CCTV에 찍힌 10초 남짓한 이 짧은 동영상에 마음이 포슬포슬해진 사람이 많았는지 조회수가 350만이나 됐습니다. 친절은 전염되는 속성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주고 손에 물건을 든 사람의 문을 잡아주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잡아주는 등 친절한 행위를 본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 자기가 본 기억을 떠올리고 똑 같이 행동하게 된다는 실험 보고서도 있습니다. 평범한 이웃의 사소한 친절과 다정함 같은 이타적인 행위가 삭막한 사회에 온기를 불어넣고 공동체의 결속을 단단하게 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한 해, 새로운 달이 시작될 때마다 무언가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1월엔 새로운 시작의 설렘이 일년 내내 지속돼 포기하지 않기를, 2월엔 감기쯤 씩씩하게 이겨내기를, 3월엔 내가 얼마나 당차고 정의로운지 주변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랐습니다.

시간이 흘러 봄이 됐을 때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것들, 즉 밤하늘의 별 보기, 씨앗 심고 나무 가꾸기 같은 것도 아주 잠깐 생각했습니다. 지난 여름 비가 많이 왔을 때도 괜찮았습니다. 올해는 유독 가을까지 비 오는 날이 이어져도 먹구름 뒤에는 파란 하늘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신하게 됐습니다.

가을도 깊어 이제 곧 겨울로 이어집니다. 한해의 끝 12월엔 주변에서 받은 사랑만큼 세상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작은 카페주인이 실천한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처럼 남에게 베푼 친절이 자신을 보호하는 안전망으로 돌아오기를, 그래서 강한 것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 걸 증명하고 무엇보다 모든 순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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