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logo

ad
ad
ad
ad

HOME  >  오피니언

[신형범의 千글자]...장황하게 말하는 힘

입력 2025-11-27 08:23

[신형범의 千글자]...장황하게 말하는 힘
내 친구는 말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만큼 말도 많습니다. 말 많은 이들이 흔히 그렇듯이 악의가 없고,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합니다. 문제는 말이 많은 건 들어주겠는데 요지를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무슨 말을 하든 장황합니다. 말을 하다가 방향을 잃고 빙빙 돌다가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간 데 없고 엉뚱한 곳을 헤매기 일쑤입니다.

어쩌다 통화할 일이 있어 전화로 얘기할 때도 비슷합니다. 원래 하려던 얘기가 있었을 텐데 잊어버리고 변죽만 울리다 통화를 끝내면 이내 다시 전화를 걸어옵니다. 정작 할 얘기를 빠뜨렸다면서. 그때마다 나는 제발 통화하기 전에 생각을 좀 정리하고 전화하라고 잔소리하지만 입만 아픕니다.

나는 성격이 급한 탓인지 일할 때 들인 버릇 때문인지 대화가 늘어지거나 겉도는 걸 잘 참지 못합니다. 이야기의 핵심과 결론이 먼저 선명하게 드러나야 개운하고 속이 시원합니다. 흔히 말하는 두괄식을 좋아합니다. 결론이 먼저 드러나고 부가적인 정보는 필요할 때마다 물어보면 됩니다. 그래서 내가 친구한테 제일 자주 하는 말도 “결론부터 말해”입니다.

특히 직장이나 비즈니스에서도 그렇지만 말하는 것에도 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는 구구절절 설명하는 걸 싫어합니다. 내 질문을 재빨리 파악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팩트를 근거로 육하원칙에 맞춰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상대를 만나면 그 사람은 왠지 똑똑해 보이고 일도 잘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효율성만 따져서 이뤄진 대화는 대부분 기억에 오래 남지 않습니다. 정보로써의 필요가 끝나면 기억에서도 완전히 사라져버립니다. 반면 말하면서 사안의 중요도를 따지지 않고 여러 공간과 시간을 왔다갔다하면서 빙글빙글 돌아서 목적지에 도달한 얘기들은 문득문득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의 감정이 기뻤다가 슬퍼지고 또 놀랐다가 불안해하면서 널을 뛰었던 게 뒤늦게 나한테 전해져 오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전문적으로 훈련 받지 않은 사람이 매번 기승전결을 갖춰 논리적으로 말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게 아니라 거의 불가능합니다. 나를 포함해 보통 사람들의 대화는 대체로 부담 없이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이어지는 게 일반적입니다. 간단명료함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도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려는 말이 뭐냐”고 결론을 재촉하고 싶어질 때면 잠시 멈추고 쓸데없는 얘기의 가치를 떠올려보려고 합니다. 목적지로 직진하는 말과는 다른 힘이 빙빙 둘러가는 말 속에 들어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저작권자 © 비욘드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