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千글자]...2025년 한국의 아이히만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12170805340739746a9e4dd7f220867377.jpg&nmt=30)
악당이 등장하는 영화는 대개 악당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를 보여주면 그걸로 절반은 성공입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바스터스 : 거친 녀석들》을 보면 악랄하기 짝이 없는 나치 장교가 나옵니다. ‘유대인 사냥꾼’이라는 별명처럼 한스 란다 대령은 뛰어난 직감과 경험으로 많은 유대인을 찾아내 처단합니다. 그러나 한스는 시종일관 여유롭고 유머가 넘치며 예의 바르게 행동합니다.
이 배역으로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은 크리스토프 왈츠는 악역을 어떻게 그렇게 연기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그 사람은 악하지 않았다”고 대답합니다. 유대인 일가족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몰살하는 연기를 하면서도 나쁜 인물을 연기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던 겁니다.
독일 출신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여기저기 자주 인용돼 익숙한 책입니다. 특히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은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만큼 오해도 많습니다. 나치의 학살 명령을 수행한 아이히만 소령이 사실은 우리처럼 평범한 보통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또 사람은 누구라도 마음 한 구석에는 악을 품고 있다는 식의 해석도 아닙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설명한 것처럼 절대악의 평범성은 악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아이히만의 악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인식하지 않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요즘 재판을 받고 있는 군인과 고위 공직자들이 주장하는 위법성의 인식은 법리논쟁과는 별개로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위법성이 없다는 주장은 유죄판결을 피하려는 변명이기도 하지만 자기 행동의 의미를 모르고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었다는 자백입니다. 군사령관, 고위 행정관료는 시키는 대로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조직에서 상층부일수록 판단을 내리고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지난 1년 역사에서 군수뇌부, 국무총리, 장관들이 대통령의 명령을 수행하기만 했다는 ‘무사유’는 결국 아이히만과 다를 게 없습니다. 위로 갈수록 책임의 무게는 무거워지고 때로는 위법한 명령에 사표를 던질 정도의 결단과 철학도 필요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 없음’은 개인적 문제지만 나라를 이끄는 사람의 ‘무사유’는 그 자체로 유죄입니다.
엘리트 과정을 차곡차곡 밟아 올라간 이들이 어쩌면 이렇게 무기력하고 비겁한 무능력자가 됐을까요. 나는 자신의 그릇과 역량을 파악하는 자기객관화와 성찰이 빠져 있는 우리 교육시스템이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교육이 만든 유능한 무능력자와 이기적 행태, 그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 법정에서 그리고 역사에서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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