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ad

logo

ad
ad
ad

HOME  >  오피니언

[신형범의 千글자]...유종의 미

입력 2025-12-31 08:08

[신형범의 千글자]...유종의 미
한 작가가 책을 내고 처음으로 ‘북토크’를 열었습니다. 자신이 글을 쓰던 단골 카페에 마련된 자리라 더 각별했습니다. 무명 작가의 북토크에 사람들이 오기나 할까 걱정돼 잠까지 설쳤지만 우려와 달리 눈 밝은 독자들이 제법 와서 북토크는 나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작가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을 담아 배웅했습니다. 언제 또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지 몰라서, 또 독자들의 뒷모습까지 간직하고 싶어서 정성을 다했습니다. 모두 떠나고 빈 카페에는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독자 한 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혹시 하고 싶은 얘기가 남았는지 작가가 묻자 “마무리까지 지켜보고 싶어서요. 마지막 페이지까지 마음을 다해 읽는 것처럼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아주 오래 전 일인데도 작가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유종의 미(有終之美)’는 모든 일에 마무리를 잘한다는 뜻입니다. 마무리를 잘한다는 건 마음을 다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초심을 한결같이, 매 순간 진심을 담아,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마지막까지 우직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경쟁사의 신제품을 두 달 만에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분초를 다투는 바쁜 일상에서 마무리까지 잘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 마음과 같은 강도와 속도, 깊이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단계까지 이르는 동안 모든 과정은 지루하고 지난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게 초심과 진심과 성심을 한 데 묶어 단단히 매듭지을 때 비로소 ‘유종의 미’는 완성됩니다.

한 해가 저물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너무 식상한 문장이지만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물론 오늘 하루가 남았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중요하고 어렵습니다. 이번에는 다가올 2026년 새해보다 2025년을 시작하던 때의 나에게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올 한 해를 시작했는지, 어떤 목표를 세웠고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는지 기억을 끄집어냅니다.

그 생각과 목표들을 실제로 이루었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게 아니라 그때의 마음과 설렘을 간직한다면 지나간 것들도 여전히 소중하게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기대와 설렘도 중요하지만 지나가버린 각오까지 기억하며 산다면 살아가는 모든 시간이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올 한 해 ‘천 글자 일기’와 동행해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저작권자 © 비욘드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