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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또만이

이순곤 기자

입력 2026-08-19 06:44

[신형범의 千글자]...또만이
대학원 논문 막바지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딸아이의 별명은 ‘또만이’입니다.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사귄 친구가 지어준 별명입니다. 또만이는 ‘또 만들었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맞습니다. 딸은 어려서부터 필요하거나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자기가 직접 만들어 욕구를 충족시켰습니다.

어렸을 때 놀이공원 같은 데서 파는, 어른들이 보기엔 기능적으로도 장난감으로도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조잡한 물건을 사달라고 조른 적 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어떤 사람입니까, 단호하게 잘랐지요. 그날 집에 돌아온 딸은 나무젓가락과 고무줄, 골판지 같은 걸 뚝딱거리더니 그럴듯한 장난감 파리채를 만들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친구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됐는지 친구는 딸아이를 ‘또 만들었어?’라며 놀리다가 결국 ‘또만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또만이’에는 우리 부부도 약간의 지분이 있는 셈입니다.

한번 만들고 말면 그것으로 끝인데 자꾸 반복하니까 ‘또’만이가 된 것입니다. 모임이나 약속시간에 자주 늦는 친구는 어디나 한 명쯤 있습니다. 그 친구가 도착하면 다들 한 마디씩 합니다. “또 늦었네”라고. 엄밀히 말하면 과거에 지각한 것과 이번에 늦은 것은 별개의 독립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또’를 넣으면 서로 다른 이유와 행동이 같아지고 반복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말하는 사람은 이미 자기가 옳다는 믿음을 전제로 말합니다. 이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또’ 늦었네,라고. 그러면 ‘또 늦었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오늘의 지각은 더 이상 독립적인 사건이 아닌 게 됩니다. 예전의 지각이 소환돼 오늘의 지각과 하나로 합쳐집니다. 별개의 사건을 반복으로 만들고 반복은 성향이 되고 성향은 그 사람을 규정합니다.

화를 내고 있는 사람에게 “또 화났어?”라고 하면 그 사람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고 “또 잔소리야” 하는 순간, 매번 잔소리하는 사람이 돼버립니다. 지금 내가 잘못한 일로 꾸지람을 듣는 줄 알았는데 ‘또’가 붙는 순간 과거의 잘못까지 불려 나와 늘 ’그런 사람’이 돼버립니다. ‘또’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행동이 저절로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되는 게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를 같은 것으로 묶을 때 만들어집니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또’라는 말을 자주 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 한 글자로 타인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요. 과거 기억을 소환하지 않고 지금 일어난 일은 현재의 사건으로만 한정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야 타인도 고정된 사람이 아니라 늘 새로운 사람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또만이도 맨날 뭔가를 만드는 건 아닙니다. ^^*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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