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千글자]...‘남의 편’을 위한 변명](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2130800190770046a9e4dd7f220867377.jpg&nmt=30)
대한민국엔 모든 남편들의 공적(公敵)이 몇 명 있습니다. TV스타 최수종, 가수 션(로승환) 같은 이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비현실적인 애정을 일상에서 실천하면서 아내에 대한 사랑을 과시합니다. 반면 시인 문정희(文貞姬 1947년~ )는 《남편》이라는 시에서 남편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시를 읽으면서 ‘그래, 이런 게 남편이지’ 하며 위안을 얻습니다. 최수종, 션 같은 사람은 각 대륙에서 간혹 한둘씩 발견되는 희귀종이고 보통의 남편들은 다 시인의 남편과 비슷합니다. 반찬 뚜껑을 열지 못해 다 해 놓은 밥도 챙겨 먹지 못하고, 뻔히 눈 앞에 있는 양말을 찾지 못해 기어이 아내의 손길을 빌려야 하는 그런 남편들 말입니다.
어떤 이는 남편을 ‘남의 편’으로 정의하지만 문정희 시인은 가장 가깝지만 이해 못 할 존재인 남편의 역설을 생활의 말맛으로 포착했습니다. 아버지도 오빠도 아닌 애매한 촌수는 관계의 복잡함으로, 잠 못 이루는 연애를 상의하고 싶다가도 돌아 눕는, 친밀과 금기의 경계를 드러냅니다. 밥과 전쟁을 병치시켜 일상에서 연대와 갈등을 반복하며 쌓아 온 서사를 서로의 온기로 녹여냈습니다.
내가 변명을 하려는 게 아니라 아무리 봐도 ‘대륙의 희귀종’보다 시인의 남편 쪽이 훨씬 더 사람 냄새가 짙게 납니다. 사람들이 결혼하는 이유를 ‘내 편이 절실해서’라고 말하는 걸 본 적 있습니다. 굳이 ‘남의 편’이 아니더라도 또 ‘제 새끼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죽을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게 마음 든든한 일 아닌가요. ^^*
sglee640@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