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12.03(화)
[신형범의 千글자]...계절이 뭐 이래? 그래도 첫눈
나는 어렸을 적부터 대한민국은 뚜렷한 사계절이 있는 아름다운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요즘 아이들한테 이렇게 얘기했다간 ‘옛날사람’이라며 꼰대 취급 받기 딱 좋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계절이 바뀌는 시기를 장담할 수 없게 됐고 그 변화 또한 종잡을 수 없게 됐습니다.

봄은 언제 왔는지 모르게 슬그머니 왔다가 어느 순간 훅 가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순서대로 피던 매화 산수유 개나리 철쭉 같은 봄꽃들이 정신 못 차리고 제멋대로 피었다가 한꺼번에 지기도 합니다. 꽃들을 옮겨 다니며 서식하는 벌과 나비들도 따라서 정신을 잃고 왔다갔다하더니 요즘은 개체수가 줄어 지구 생태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여름의 변화는 더 극악스럽습니다. 올 여름을 지낸 사람들이 생전 처음 겪어보는 더위라고 혀를 내둘렀는데 기후 전문가들은 앞으로 매 여름마다 제일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고 겁을 줍니다. 거기다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내리는 비는 또 어떤가요. 예측이 무의미할 정도로 잦고 양도 많은가 하면 어떤 여름은 아예 내리지 않아 ‘마른장마’는 일상어가 될 정도입니다.

가을은 점점 늦어지고 있습니다. 9월이면 가을에 접어든다고 했는데 10월 지나 11월이 돼야 제법 가을 정취를 느낄 정도입니다. 기온이 내려가지 않으니 나무들은 여전히 여름인 줄 알고 푸른 이파리를 주렁주렁 달고 멀뚱히 서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 아름답던 단풍이 예전만 못하다고 불평합니다. 사실, 이건 나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기후변화 탓이고 그 변화는 인간이 저지른 잘못과 쌓은 업보 때문입니다.

그런 11월 끝자락인 어제와 그제 서울지역에 눈이 20cm나 내려 117년 만의 폭설이라고 합니다. 소설의 첫 문장처럼 하룻밤 자고 났더니 설국이었습니다. 다행인지 기온이 낮지는 않아서 쌓이지는 않았지만 여름 끝난 게 엊그제 같은데 폭설이라니요, 그것도 첫눈인데. 시인 문정희는 첫눈을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이라고도 했습니다. 누구나 첫눈에 얽힌 비밀스런 추억 하나쯤은 품고 살지 않나요.

어릴 때 열두 달을 계절로 나누면 ‘3 3 3 3’으로 공평했는데 지금은 ‘2 4 2 4’로 배분하는 게 더 현실적입니다. 그러고 보니 겨울은 또 어떤 얼굴로 우리를 맞을지 궁금해집니다. 길지 않은 생애에도 이렇게 극심한 변화를 겪는 중인데 기후변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적고 대책은 보잘것없다니 문제입니다.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지구 형편이 나빠지고 있는데 철딱서니 없는 인간들은 전쟁과 정쟁과 밥그릇을 두고 무리 지어 패사움만 하고 있으니 가끔은 의연하고 무심해 보이는 나무가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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