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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안전에 드는 비용

입력 2025-09-05 08:07

[신형범의 千글자]...안전에 드는 비용
내가 사는 아파트는 건축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여기저기 보수할 곳이 생기고 외벽 도색, 주차장 방수처리 같은 공사는 물론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일들을 관리사무소가 맡아서 합니다. 이때 안건이 결정되면 공사 내용과 기간, 담당할 업체 등을 주민에게 공시하는데 업체를 선정한 기준은 거의 ‘최저가 입찰’ 방식입니다. 이런 공고문을 볼 때마다 좀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무조건 가격이 낮다고 해당 업체를 선정하는 게 맞는 것인지.

최저가 입찰의 배경에는 한국사회 특유의 ‘신뢰 부족’ 깔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품질이나 책임을 따지려면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됩니다. 이 과정에서 판단의 근거가 뭐냐, 특정 업체를 밀어주려는 것 아니냐, 다른 뒷거래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늘 따라붙습니다. 이런저런 뒷말이 안 나오게 하려면 누가 봐도 이견의 여지가 없는 숫자가 확실한데 그중 손쉽고 공정해 보이는 기준이 바로 가격입니다.

당초 정상적인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의지도 약해 보입니다. 좀 확대해서 보면 아파트 재개발 현장에서 심심찮게 터져나오는 시공사와 조합원의 공사비 갈등이 대표적입니다. 시공사는 안전조치 강화, 공사기간 연장 등으로 비용이 늘어 공사비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면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조합원은 거의 없습니다.

국가기관, 특히 공무원이 발주처가 되면 그 경직도는 훨씬 심각합니다. 말로는 안전을 강조하면서 정작 발주공사의 낙찰 기준은 늘 최저가 입찰입니다. 숫자(가격)로 해야 뒷말이 없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보내는 겁니다. 그러니 민간에서도 쉽게 최저가로 결정합니다.

안전에 드는 비용 때문에 공사비를 올려야 한다는 건설사 말을 어디까지 믿을지는 검증해봐야 하지만 낮은 금액이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사고 현장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공사비를 낮추면 시공사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무리해서 비용을 아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대개 안전에 드는 비용이 희생됩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산업재해 문제가 여러 번 거론됐습니다. 해당 부처 장관에 직을 걸라고도 했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해 강력한 대책을 찾으라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강경 대응과 좋은 취지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싼 게 최선(최저가 입찰)이라는 병폐를 해결하지 않는 한 산재사고를 막을 수 없습니다.

기업의 탐욕이 제일 큰 책임이지만 사고는 부실한 제도 때문에도 발생합니다. 입찰 기준에 책임과 품질, 적정 예산과 공사기간을 보장하면서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정성적 판단기준이 부패와 검은 거래로 이어지지 않도록 투명성, 전문성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대해선 할 말이 없지만 공사 문제에 잡음이 없는 나라들을 보면 쉽지 않을까요. 안전을 강화하는 건 그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겠다는 뜻입니다. 사회 전체가 기준을 지키는 데 적정한 비용을 들이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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