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은 자연의 흐름을 따라 변화하는 계절의 이미지로 문을 연다. 꽃이 피었다 지고, 비가 내리고 그친 자리에서 다시 빛이 스며드는 자연의 순환은 우리의 삶과 깊게 닿아 있다. 상실은 결국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고, 멈춰 서 있는 것 같은 순간 속에서도 희미한 온기가 자라고 있다는 메시지는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 작가는 얼음이 녹아 봄의 숨결이 번지듯 마음의 상처가 서서히 회복되는 과정을 따뜻한 시각으로 그려낸다.
시집 곳곳에는 떠남과 머묾, 사랑과 이별, 시작과 끝을 오가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어머니를 배웅하던 문턱에서의 침잠된 감정, 장례식장 복도에 겹쳐 쌓인 시간들, 열아홉의 겨울을 지나 내일의 문 앞에 서 있는 아이의 뒷모습 등 개인적이고 사적인 풍경은 보다 넓은 공감으로 확장된다. 저자는 사라짐이 끝이 아니라 향기로 남아 다시 삶을 움직이게 한다는 사실을 조용한 어조로 전한다. 한 편의 기도처럼 낮게 깔리는 문장과 일상의 희미한 빛을 놓치지 않는 시선은 독자가 스스로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
'슬픔 끝에 빛이 머문다'는 총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은 계절의 변화가 건네는 인생의 온도와 깨달음을 담고 있으며, 두 번째 장은 사랑이 남긴 흔적과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불씨를 기록한다. 세 번째 장에서는 그리움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삶의 조각들을 되짚고, 네 번째 장에서는 내 안에서 등불처럼 반짝이는 존재들을 향한 마음을 노래한다. 마지막 장은 삶의 길 위에서 건져 올린 기도 같은 순간들을 통해 독자에게 묵직한 위로를 건넨다.
책 속에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첫 숨결이 하나의 노래가 된다”, “사람에게서 사랑이 피어나고 사랑 속에서 삶이 흘러간다”, “깨짐은 찰나의 자유이자 동시에 긴 이별이다”, “사랑은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음이다”, “괜찮다고 말하며 결국은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나아간다”, “가끔은 길을 잃어야 새로운 꽃을 만날 수 있다”와 같은 문장들이 실려 있어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되돌아보게 한다.
시인 현산은 삶의 고요한 순간에서 피어나는 감정과 기억을 섬세한 언어로 기록하는 작가로, 오랜 시간 교육자로 살아오며 얻은 통찰을 첫 시집에 담았다. 그는 상실의 중심에서도 여전히 꺼지지 않는 희망을 노래하며 독자에게 오래 남는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김신 비욘드포스트 기자 news@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