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초면 답을 얻는 시대, 다시 책으로 향하는 청년들…‘텍스트힙’ 새로운 독서문화로
북쳠쳠·느릿느릿 글방부터 ‘시흥 책모락’·시흥책여행까지…읽고 기록하고 함께 나누다
김혜순 관장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일상 가까이에서 책을 읽는 기쁨 누리도록 하겟다”

‘느리지만 더 깊게’ 시흥시 소래빛도서관이 시민들에게 건네는 독서의 방식이다. 빠르게 정보를 얻는 대신 한 문장을 천천히 읽고, 마음에 남는 문장을 손으로 옮겨 적는다. 혼자 책 속에 오래 머물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과 책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AI가 ‘정답을 찾는 시간’을 줄여주고 있다면 도서관은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되돌려주고 있는 셈이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독서문화도 이 같은 변화와 맞닿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202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38.5%인 반면 20대는 75.3%로 전체 성인 평균의 약 두 배에 달했다.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상 깊은 문장을 기록하거나 책을 매개로 취향을 공유하는 이른바 ‘텍스트힙’도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 역대 가장 많은 16만명이 방문한 것도 책을 둘러싼 달라진 풍경을 보여준다.
소래빛도서관은 이러한 변화를 시민의 일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소래빛도서관에서는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흘러간다. 책 한 권을 빨리 읽어내는 것보다 오래 머물며 자신의 생각을 발견하는 독서에 무게를 둔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어린이 북쳠쳠 독서성장 1000+’가 대표적이다.
‘북쳠쳠’은 책을 의미하는 북(Book)과 ‘천천히’의 옛말인 ‘쳠쳠’을 결합한 이름이다.
5~13세 어린이 260명을 대상으로 맞춤형 독서기록장을 제공해 어린이들이 독서를 숙제가 아닌 꾸준한 습관으로 받아들이도록 돕고 또 목표 역시 한 번에 높게 잡지 않는다.
활동을 4단계로 나눠 아이들이 부담 없이 책을 읽고 하나씩 목표를 이루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월부터 2층 종합자료실 사이에 문을 연 필사 공간 ‘느릿느릿 글방’도 같은 철학을 담고 있다.
도서관 운영 시간에는 누구나 찾아와 준비된 필사도구와 추천도서를 이용할 수 있다. ‘영원의 문장들’, ‘어른의 문장들’ 등 삶을 돌아보고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책을 읽은 뒤 마음에 남은 문장을 직접 옮겨 적는다.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듯 문장을 빠르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 글자씩 손으로 써 내려가며 책과 자신의 생각에 오래 머무는 공간이다.

혼자 깊게 읽는 것만큼 함께 읽고 경험을 나누는 ‘소셜리딩(Social Reading)’도 소래빛도서관이 주목하는 새로운 독서문화다.
그 중심에 시흥의 야외 독서축제 ‘시흥 책모락’이 있다.
‘책모락’에는 갯골 옛 염전의 수증기처럼 자연 속에서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의 온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결의 장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올해 행사는 내달 17일 갯골생태공원에서 ‘느리게, 깊게, 오래 머무르는 힙한, 자연 속 책 놀이터’를 슬로건으로 열린다.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전통적인 독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책과 음악, 전시, 체험을 함께 즐기는 ‘문학 테라피’ 공간으로 꾸민다.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은 도서관을 자연으로 그대로 옮겨놓은 ‘모락서재’다.
독서동아리 ‘네모의 꿈’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주제로 기획전시를 준비하고, 책과 와인을 결합한 북테이스팅도 선보인다.
임주아·이훤 시인의 북토크와 조해진 소설가의 ‘가을날의 문학 테라피’ 강연도 마련됐으며 시흥시립합창단과 샹송제이 재즈밴드의 공연을 통해 책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가을의 정취도 선사한다.
도서관 안의 ‘느릿느릿 글방’도 이날만큼은 자연으로 나오며 빈티지 타자기를 경험하는 ‘글모락 타방’을 비롯해 조수진 작가와 함께하는 스케치 워크숍, 꽃테라피, 전통 짚풀공예 등 책에서 시작해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되는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시흥책여행’ 역시 책을 개인의 독서에서 시민의 경험으로 확장하는 프로그램이다.
시민이 스스로 책여행 주제를 정하고 책을 읽고 기록한 뒤 공공도서관 인증을 거쳐 자신의 독서 여정을 완성한다.
올해는 ‘나만의 책여행 코스 추천’, ‘책과 관련된 여행지 추천’, ‘나를 멈추게 한 문장 공유’ 등 세 가지 도전을 더해 참여의 재미를 높였다.

소래빛도서관의 실험은 결국 ‘도서관은 무엇을 하는 공간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과거 도서관이 책을 빌리고 공부하는 공간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책을 중심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머무는 문화공간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도서관과 시민을 연결하는 소식지 ‘북브릿지’도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
소래빛도서관은 연 4회 북브릿지를 발행해 도서관의 프로그램과 사람, 독서문화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있으며 올해 1분기에는 지난 한 해의 도서관 활동과 새로운 출발을 담았고 2분기부터는 주요 행사와 시흥 책모락 기획특집, 도서관의 비전 등으로 콘텐츠를 확대했다.
북브릿지는 도서관과 지역 게시판, 홈페이지, SNS 등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시민과 만난다.
몇 초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 AI시대에도 책장을 넘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문장 앞에서 멈추고 생각하는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소래빛도서관이 선택한 것은 바로 그 ‘느림의 가치’다.
정보를 얼마나 빨리 얻느냐보다 무엇을 질문하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중요해지는 시대, 도서관의 역할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혜순 소래빛도서관장은 “자연 속 독서축제인 ‘시흥 책모락’부터 어린이의 꾸준한 성장을 돕는 ‘북쳠쳠’, 도서관과 시민을 잇는 ‘북브릿지’까지 시흥시 독서정책은 시민이 느리고 깊게 도서관에 머물며 누릴 수 있는 선물 같은 독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일상 가까이에서 책 읽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독서환경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송인호 기자 sih31@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