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2024.03.29(금)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지난 6월 26일 서울대학교에서 청소 일을 하던 여성 노동자 59세 이모씨가 관악학생생활관(서울대 925동,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진 채 발견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숨진 이모 청소노동자에서 극단적 선택이나 타살 혐의점은 보이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고, 평소 지병이 없었으며, 건강한 편이었다는 게 유족과 동료 노동자들의 전언이다.

그런데 유족과 동료들은 이모 청소노동자의 숨진 원인을 과도한 노동 강도의 힘든 업무와 군대식 업무지시와 갑질 등 직장 내의 괴롭힘 때문이라며 “갑질 사망”을 주장하고 나선 가운데 서울대 측은 “마녀사냥”이라고 반박함으로써 논란이 일고 파장이 커지고 있다. 고인의 사인(死因)이 과로나 괴롭힘 때문이었는지는 현재 서울대 인권센터에서 직장 내 갑질 여부에 대한 의혹을 조사하고 있어 정확한 것은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숨진 이모 청소노동자가 홀로 담당했던 관악학생생활관은 196명의 학생이 거주하는 비교적 규모가 큰 기숙사로 화장실 8개와 샤워실 4개가 있는 기숙사 전 층 모두를 혼자서 청소를 해왔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학생들의 배달 음식 주문이 급증하면서 쓰레기양이 급격히 늘어나 1년 6개월간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건물에서 꽉 찬 100 리터 들이 쓰레기봉투 6~7개씩과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등을 매일 혼자 들고 나르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여러 차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과 동료들에 따르면, 이곳 서울대 청소노동자들은 학생들처럼 어처구니없는 필기시험을 치러야 했다고 한다. 시험의 내용은 더욱 황당하다. 건물의 명칭을 영어와 한자로 쓰라는 문항(관악학생생활관을 한문으로 작성하시오)이 있는가 하면, 건물의 준공연도는 언제 인지를 묻는 문제(919호관의 준공연도는?, 우리 조직이 처음으로 개관한 연도는?)도 있었다고 한다.

건물을 깨끗하고 청결하게 유지하고 편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청소 업무에 이런 지식이 왜 필요한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단순히 시험을 치르는 데 그치지 않고 시험 성적을 공개해 망신까지 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 기이한 시험과 성적 공개는 그동안 정기적으로 이뤄졌다고 하는데, 노동자들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고 모욕감과 자괴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러한 갑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더욱 황당하고 기가 찬 것은 매주 수요일 청소노동자를 소집해 회의를 진행하면서 남성 직원들은 정장 또는 남방에 멋진 구두를 신을 것을 요구했고, 여성 직원들은 회의 자리에 맞게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하라고 강요했으며, ‘드레스 코드’에 맞추지 않고 작업복 차림으로 회의에 참석하면 근무 성적을 1점씩 감점하겠다고 했고, 또 볼펜이나 수첩을 가져오지 않아도 근무 성적을 1점씩 감점하겠다며 업무와 상관없는 스트레스를 줬다고 한다.

이와 같은 ‘갑질 피해’ 의혹에 대해 서울대 일부 관계자들은 실제 청소 결과 100 리터 들이 쓰레기봉투는 2개 이내라거나 필기시험은 유학생이 많아 현장 근로자들이 외국인을 응대하는 경우가 많아 직무교육 차원에서 시행했다거나 ‘드레스 코드’는 업무회의 후 바로 퇴근하라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오시라는 취지였다고 반박하고 나섰지만, 일부 보직교수들이 자기 책임을 덮으려고 오히려 온갖 궤변과 망언을 쏟아 내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국민의 공분만 더해지고 있다.

심지어 건물 청소를 일찍 끝내고 휴게실에 간 한 노동자에게 “근무지 이탈”이라면서 반성문을 쓰게 해 더 큰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지성의 전당이자 양심의 최후 보루라고 하는 대학에서 그것도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인 서울대에서 비인격적 행태가 자행된 것에 대해 싸늘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는 서울대의 이러한 부끄러운 민낯은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라는 간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라는 표현을 담은 반박 글로 논란의 중심이 됐던 학생처장의 보직 사퇴는 결국 수리되었다.

더욱이 “페이스북에 2차 가해 글을 남겼던 학생처장과 고인의 근무지인 관악학생생활관의 관장은 이 사건의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대 인권센터의 운영위원회 위원이라서 더욱 문제”라는 주장이 있고, 학생처장은 갑질 의혹을 받고 있는 팀장의 과거 석사과정 지도교수였다는 언론보도가 있어 더욱 그렇다. 결국 고인의 남편 이모씨는 7월 15일 서울대에서 열린 유족·노조 간담회에서 “어제까지 학교에서 공정한 조사가 이뤄질 거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조사를) 거부한다.”라며 “오늘부터 응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이미 서울대학교총장은 고인 측의 산업재해 신청과 관련해 성실하게 협조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가 있었고 “인권센터의 조사 결과에 따라 미비한 부분이 발견되면 적극적으로 조치할 계획”이라며 “청소 업무 시설관리직 직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해 근무환경과 인사관리 방식을 다시 점검하고 부족한 점을 개선하겠다.”라고 전했고, “다시 한 번 고인과 유가족께 깊은 애도를 표하며 공정한 인권센터 조사와 유가족 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덧붙인 바 있다.

하지만 서울대가 학교 안에서 발생한 청소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개인 질병인지 아니면 업무로 인한 질병인지를 먼저 판단해야만 할 사안이지만 고용노동부에 즉시 신고하지 않고, 교내 인권센터에서 조사하는 등 자체적으로 산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아닌지 의혹이 일고 있고, 가장 무거운 책임이 있을 수도 있는 사업주가 스스로 사건을 셀프 조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런 가운데 급기야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7월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하여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일부 통상적인 업무를 벗어난 부분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보고 있고, 조사를 토대로 개선조치를 마련토록 하겠다.”라고 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은 ‘공정’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우리는 기울어진 사회구조 이면에 도사린 ‘능력주의의 덫’에 걸려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져 스스로가 속고 사는지도 모른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워주는 능력주의(Meritocracy)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퍼뜨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존 롤스(John Rawls)는 “능력주의가 민주적일지는 몰라도 공정성에 위배 된다.”라며 배격했다. 마틴 루서 킹(Martin Luther King, Jr.)은 “도덕 세계의 궤적은 길다. 그러나 반드시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라고 말했지만, 능력주의는 불평등의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능력주의는 대안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지속시키는 동인으로 작동할 우려가 크다. 승자는 자신의 승리를 자신의 능력에 따른 것으로 확신하고 본인의 노력으로 얻어낸 성과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연한 보상이라고 여기게 되며, 결국 자신보다 부족하거나 덜 성공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그 위에 군림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패자는 누구의 탓도 하지 못하고 모두 다 스스로가 못난 탓이라고 체념의 분루를 삼키며 자기 자신을 자학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은 승자 측의 권력을 위한 체제로 기능하게 되고, 계급의 문제를 양산하게 되며, 특권을 정당화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를 회고해 보면 선천적으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부의 창출을 통한 사회 기여보다는 권력을 추구하여 그렇지 못한 다수를 그들에게 복종하도록 강제하는 정치체제를 탄생시켰다. 그러한 결과 다수의 힘없는 노동자들은 되려 소수의 권력 집단의 지배를 스스로 선택하여 예속하게 되었고 그들의 노예 역할을 자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항은 힘을 가진 소수의 권력 집단의 노예가 아닌, 뛰어난 부의 창출 능력을 지닌 소수의 권력 집단으로부터 일자리와 서비스를 공급받는 자유로운 부의 소비자가 되어야 할 현명함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소수의 사용자와 다수의 노동자 간의 포용과 배려 그리고 통합과 융합의 연대로 상생의 노사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노동에 쏟은 경영의 정성이 노동의 가치가 되고 노동에 담은 경영의 배려가 노동의 영혼이 된다는 의식에서 출발하여 ‘노동을 존중하는 경영과 경영을 이해하는 노동’을 실천할 때 바람직한 노사문화가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는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죽어간 수많은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아 왔지만 ‘갑’의 절대우위의 응축된 사회모순과 고질적 노사의 치부를 떠안은 채 마취된 공동체의 늪을 지켜보기만 했다. 경쟁을 통한 가파른 성장을 유도하기보다 연대를 통한 평등한 공동체 구축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안심하고 노동에 전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진다.”라고 했던가 전북대학교 김승섭 교수는 그의 저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픕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이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과 성 소수자가 더 일찍 죽습니다”라고 했고, 컬럼비아대학교 존 C. 머터(JOHN C. MUTTER) 교수는 그의 저서 ‘재난 불평등(The Disaster Profiteers)’에서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라는 부제로 재난의 불평등을 강조했다.

사단법인인 직장갑질119와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6월 10~17일까지 ‘갑질 감수성 지표 및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사한 결과를 7월 12일 발표 했는데 직장 갑질 감수성 점수는 평균 71.0점이었다. 감수성 점수가 높은 항목은 폭언(84.8점), 모욕(83.4점), 임금 체불(81.1점), 병가(79.0점), 업무 외 지시(78.6점) 순이었다. 또한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최근 직장인 1,277명 대상으로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변화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77.8%가 체감하지 못한다.’, 50.1%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라고 답해 직장 내 우월적 지위 등을 이용한 갑질은 여전하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고 가해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을 통하여 인식변화와 조직문화가 바꿔나가야 한다. 법 적용에서 제외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대책도 강구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갑질이 용납되지 않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다. 우리 주변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고된 일을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격권과 쾌적한 노동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강제적인 제재 수단이 조속히 만들어져 서둘러 시행해야만 한다.

따라서 서울대는 유족과 청소노동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할 것이다. 조사결과 갑질 관련자들은 엄중 문책할 것은 물론 시대착오적이고 강압적인 인사관리 방식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윤을 추구하기보다 윤리 추구에 더 심혈을 기울이고 조직의 목표와 사용자인 경영의 목표 그리고 근로자인 노동의 목표간 교집합의 총량을 늘리고 물방울처럼 유동하는 액체 리더십으로 근로자의 가슴마다 촉촉이 스며들어 마침내 조직 전체가 흥건히 적셔지는 감성경영으로 보듬고 품는 상생의 노사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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