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千글자]...웰다잉, 조력존엄사](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41708163804322046a9e4dd7f220867377.jpg&nmt=30)
투병 막바지인 2022년, 자기가 좋아하던 프랑스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가 스위스에서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를 보고 류이치는 자신도 ‘존엄사’로 생을 마치는 게 옳지 않을까, 잠깐 고민합니다. 생각이 많아졌지만 깊게 고뇌하지 않습니다. 대신 “나는 앞으로 보름달을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라며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과 눈에 밟히던 것들을 정리합니다.
죽는다는 건 나와 주변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와 주변,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 즉,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경계가 소멸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죽어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 경험을 증언해 줄 사람은 역사 이래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정의는 많았지만 명확하게 ‘이렇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도 웰다잉, 존엄사 같은 담론이 논의되기 시작한 게 제법 오래 전부터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정서적 합의를 이루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말기암 같은 현대의학으로는 치료와 회복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환자와 가족들은 다른 대안 없이 그저 고통과 싸우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직 의료조력사를 법으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존업사법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데 계류 중인 법률안에선 ‘조력존엄사’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의료진이 돕는 죽음은 ‘의료조력사’를 지칭하고 최근에는 ‘자기결정’이라는 의미에서 ‘선택사’라는 용어를 쓰기도 합니다.
현재 미국 몇몇 주와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의 국가에서는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존엄사를 허용하는 요건이 다르고 용어의 차이도 있지만 추구하는 목표는 같습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 몸과 마음이 덜 고통받는 것 등입니다. 죽는 게 낫겠다고 여길 정도로 극심한 통증에 몸부림치는 환자들이 마음 편하게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감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한국존엄사협회, 노년유니언 등 존엄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주장하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아 당분간은 표류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존엄사법의 법안 통과는 원하는 경우 한국인이 한국에서 죽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섣불리 제도화하기가 쉽지 않지만 마냥 미룰 수만도 없습니다. 더 넓고 깊은 숙론과 그에 따른 합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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