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千글자]...조훈현의 승부](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4220828150842946a9e4dd7f121131159237.jpg&nmt=30)
조훈현 이창호 사제간 대결 자체만으로도 극적인데 둘의 관계는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롭습니다. 이창호는 그냥 제자가 아니라 스승의 집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내제자입니다. 15살에 불과한 이 내제자는 스승이 가진 타이틀을 차례로 빼앗고 ‘계산의 신’으로 떠올랐습니다. 하루아침에 무관으로 전락한 조훈현은 그대로 무너집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납니다.
스물두 살 차이인 두 사람은 성격은 물론 생활습관, 취향, 추구하는 바둑세계까지 완전히 딴판입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 역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영화 대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답이 없지만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바둑이야.” “내가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답이 없는 게 바둑인데 어떻게 너한테 답을 주겠니? 그 답은 스스로 찾아.” “답을 주는 건 스승이 아니야. 그냥 길을 터 주고 지켜봐 주는 게 스승이지.”
이런 가르침은 조훈현 자신도 일본인 스승 세고에 겐사쿠에게서 들은 말들입니다. 조훈현은 2015년 펴낸 자신의 책 《고수의 생각법》에 이렇게 썼습니다. “선생이 헤매는 학생에게 답을 알려주는 건 아주 쉬운 해결책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학생은 그 답을 받아먹을 뿐 깨달음을 얻진 못한다. 깨달음은 오직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도방법에 미리 화답한 것인지 제자 이창호는 스승의 책보다 앞서(2011년) 쓴 자서전 《이창호의 부득탐승》에 이렇게 전합니다. ‘일대일 지도대국을 통해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일단 나 스스로 다양한 곳에서 고기를 잡도록 내버려두었다가 다 끝난 뒤 과정을 함께 돌이키며 사유의 지침을 주는 것’이었다고. 이런 방식의 가르침과 배움이 쉬울 리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 많은 일들이 이와 비슷합니다. 정답이 있는 시험문제처럼 풀이를 통해 딱 떨어지는 답을 얻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개인의 삶도 그럴진대 가족이나 사회는 앞선 세대도 답을 모르는 문제,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 생기는 건 당연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그나마 안다고 생각하는 답과 그 해법을 전수하는 데 더 연연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 너냐? 도리 없지. 이게 승부니까.” 제자를 다시 적수로 맞이한 조훈현의 담담한 인정은 또 지더라도 감내하고 이겨나가겠다는 결의 같습니다. 조훈현은 이후에도 제자와 대결했고 때로 졌지만 재차 도전했습니다. 결과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까지 승부의 일부이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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