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千글자]...내 친구를 소개합니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10210823510273746a9e4dd7f220867377.jpg&nmt=30)
한번은 이 친구가 운전하는 자동차 옆자리에 앉아 가게 됐습니다. 길이 막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사실은 친구가 일방적으로 말하고 나는 듣는) 가고 있는데 친구의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나는 모르는 고향 친구라고 했습니다. 운전 중이라 스피커폰으로 연결하는 바람에 나는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을 자세히 듣게 됐습니다.
친구 : 반갑다. 오랜만이네. 어쩐 일이야?
고향친구 : 어, 한 가지 물어보려고. 내가 지금 춘천에서 ITX를 타고 서울로 가는 중인데 용산역에 도착할 거야. 그런데 다음 일정이 서울역에서 KTX로 이동해야 하거든. 시간을 보니까 용산역에 도착하고 18분 후에 서울역에서 KTX를 타야 되는데 이게 가능한가 싶어서. 시간이 된다면 KTX티켓을 예매하려고. 아무래도 니가 서울에 오래 살았고 제일 잘 알 것 같아서 너한테 전화한 거야.
친구 : 그래, 잘했다. 얘기해 줄 테니 잘 들어. 용산역에서 서울역까지는 1호선 전철로 가는 게 제일 빨라. 5분이면 갈 수 있어. 그런데 용산역에 내리면 전철로 바로 연결이 안 되거든. 플랫폼에서 역사로 올라가서 다시 전철역 개찰구를 통과해 전철 타는 곳으로 내려가야 해. 아마 굉장히 서둘러야 할 거야. 나는 바로 찾을 수 있지만 니가 쉽게 찾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전철이 빨리 와야 할 텐데. 어쨌든 전철을 타면 남영역 다음이 서울역이니까 두 정거장이야. 5분이면 돼.
출구 가까운 데 서 있다가 재빨리 내려. 서울역 전철역에 내려서도 빨리 뛰어야 해. 진짜 빨리 뛰어. 거기서도 KTX 타는 데로 바로 연결되는 게 아니니까 전철에서 나와서 KTX 역사로 달려가. 거기서 다시 KTX 플랫폼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그게 2분 안에 가능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바짝 서둘러야 해. 나는 빨리 찾을 수 있는데 너는 잘 모르겠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고향친구 : 어.
내가 요약해서 이 정도이지 친구는 용산역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과정을 반복해서, 장황하게, 때로는 강조했다가 때로는 긴장감 넘치게 무려 10분 가까이 설명했습니다. 옆에서 두 사람의 내용을 듣고 있던 나는 속이 터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 스마트폰을 열어 ITX에서 내려 걷는 시간과 전철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전철 이동시간과 서울역에 도착해서 걷는 이동시간을 계산해 보니 빨리 내리는 문과 타는 곳을 선택하고 정말 운이 좋아서 전철이 제때에 도착한다면 모험을 걸어볼 만 하지만 현실적으론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옆에서 친구에게 손짓과 입모양으로 계속 안 된다고 알려줬지만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설명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친구 : 내가 서울을 잘 아니까 다시 요약해서 설명하면 재빨리 내리고 무지하게 서두르면 갈 수 있어. 나는 갈 수 있는데 너는 어떨지 잘 모르겠다. 알겠지? 이제 해결됐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고향친구 : 어, 그래. 알았어, 큰 도움이 됐어. 고마워. 역시 너한테 전화하길 잘했다.
나 : ? ? ?
그렇게 통화를 마치자 나는 어리둥절했습니다. ‘뭐지? 어떻게 해결됐다는 거지? 18분 후에 출발하는 KTX를 탈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10분도 넘게 통화한 내용이 이게 전부인 것도 이상한데 그 고향친구가 어떤 결정을 할 지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둘은 아는데 고향이 같지 않아서 나만 못 알아들은 건가?
장황한 얘기의 핵심을 꿰뚫어 보고 ‘큰 도움을 받았다’는 그 고향친구의 ‘초능력’이 새삼 대단해 보였습니다. 어쨌든 내 친구는 그런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든 도움을 주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살면서 크든 작든 어려움에 부딪쳐도 이 친구는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움을 주려고 할 것입니다. 약간 불안해 보이긴 하지만 언제나 든든하고 힘이 되는 친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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