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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글을 계속 고치는 이유

입력 2025-10-23 08:16

[신형범의 千글자]...글을 계속 고치는 이유
글을 잘 쓰지 못하는데도 내 경우엔 말보다는 글이 더 편합니다. 성격이 급한 편인 나는 빨리 말하려다 실수하고 수습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주어와 서술어가 뒤엉키고 적절한 단어를 고르지 못해 말이 꼬여서 앞뒤가 안 맞기 일쑤입니다. 말은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위한 수단입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관계를 친밀하게 만들기도 하고 적대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없는 말이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습니다. 침묵은 현명함과 관련되고 말은 허영심과 관계 있다고 말한 철학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생각나는 대로 바로 말을 내뱉지 않습니다.

말과 달리 글은 늘 기다려줍니다. 어제 쓴 글이 엉망진창이라도 오늘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설익은 생각이 좀 깊어지면 이를 반영해 다시 쓰면 됩니다. 그러다 보니 한번 쓴 글을 계속 고치게 됩니다. 어떤 때는 초고를 쓰는 것보다 고치는 게 더 어렵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립니다. 글을 고치는 일은 정해진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 보이기 위해 한 글자를 바꾸고 뉘앙스를 비교하면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합니다. 더 나은 문장, 더 어울리는 단어, 문장의 배치와 순서를 고민하면서 이리저리 바꿔보기도 합니다. 어떤 글은 너무 많이 고쳐서 원래 제 모습을 찾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 글은 자꾸 보다 보면 익숙해져서 수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럴 땐 소리 내어 읽어보면 답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읽다가 막히거나 어색하게 이어지거나 아예 끊어지는 부분의 단어나 문장, 리듬을 가다듬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느 시인의 말처럼 글이란 완성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포기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마감이라는 게 없다면 어떤 글은 다른 사람에게 읽혀지지도 못하고 내 안에서 계속 맴돌기만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경계해야 할 게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대개 독자를 설득하거나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가르치려 들고 글로 상대를 제압하고 자기 주장을 받아들이게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니라 내 쪽으로 끌어당기는 일입니다. 상대와 공존하고 싶다는 메시지입니다.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 적는 게 아니라 생각을 ‘번역’하고 나를 넘어 타인과 세계로 확장하는 과정입니다.

말과 글은 어떻게 보면 세상을 보는 생각의 프레임입니다. 하고 쓰는 이의 관점을 담는 그릇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신중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어떤 단어가 분위기에 더 어울릴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좋은 글은 그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확고한 글보다는 흔들리는 글, 배회하고 찾아 헤매는 글, 삶의 두께가 느껴지는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집니다. 나는 가끔 글을 쓰지만 늘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나는 글 속에서나마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중입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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