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포토에세이]...'좋은 죽음'의 조건](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12220802420302446a9e4dd7f220867377.jpg&nmt=30)
먹고 살만해지면서 삶의 질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을 따지는 웰다잉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자 동서양의 학자들이 ‘좋은 죽음’을 정의하려고 시도해왔습니다. 영국에서 발간된 ‘밀레니엄 백서’에서 좋은 죽음의 조건으로 열두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죽음이 언제 닥칠지 예상할 수 있다’ ‘향후 일어날 일을 통제할 수 있다’ ‘죽음에 임했을 때도 존엄성과 사생활을 보호받는다’ ‘통증을 완화하고 증상을 관리받을 수 있다’ ‘죽음 장소에 대한 통제와 선택이 가능하다’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영적.정서적 요구를 충족한다’ ‘어디서든 호스피스 간호를 받을 수 있다’ ‘임종을 함께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생명유지장치를 쓸 것인지 사전에 결정하고 그 결정을 존중받는다’ ‘작별을 고할 시간을 갖는다’ ‘언제 떠날지를 예상하고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노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의 조건은 이렇습니다. ‘질병 없이 적절한 수명, 천수를 누린다’ ‘자식이나 배우자를 먼저 보내지 않고 부모노릇을 다해 자손들이 잘사는 걸 보고 죽는다’ ‘죽을 때 자손들에게 부담이나 폐를 끼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을 배려한다’ ‘가족이나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맞이한다’ ‘집에서 준비되고 편안한 상태로 고통 없이, 잠들 듯 죽음을 맞이한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삶을 마무리한다’
그렇지만 죽은 사람의 얘기를 들을 수가 없으니 전문가나 노인들의 의견이 100% ‘좋은 죽음’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가 죽기 직전에 인생을 돌아보며 정리한 단상 《아흔에 바라본 삶》을 통해 각자의 생각을 보태 짐작은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어제의 경험이 내일의 정답이 될 수 없고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공은 물질적 성취가 아니라 사랑을 주고받으며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이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가족 친구 좋은 음식처럼 삶을 지탱하는 본질적인 기쁨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고.
또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형용사로 표현해 주기를 원하는지, 묘비에 어떤 문구가 새겨졌으면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건 친절 믿음 정직 공정 같은 잘 보이지 않는 미덕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일상의 삶 속에서 더 친절하고 다정해지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참! 오늘 사진은 타이완의 타이난에서 찍었습니다. 생을 마감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 마치 자신의 생애에 마지막 예를 갖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