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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다시 인문학이 뜬다고?

입력 2026-04-29 08:19

[신형범의 千글자]...다시 인문학이 뜬다고?
아주 세속적이고 천박한 얘기로 시작합니다. 누가 서울대 철학과에 다닌다고 하면 보통 두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 진짜 철학을 좋아하는구나’와 ‘서울대 간판이 필요했구나’. 나만 그런가요?

솔직히 철학은 그동안 성공과 명예, 돈과는 거리가 먼 전공 과목이었습니다. 취업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전국 대학의 절반 정도는 철학과를 아예 없앴습니다. 철학과가 남아 있는 학교라 해도 학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철학과를 내세웠지만 이른바 ‘문사철’로 대표되는 문학, 사학 같은 인문학 분야도 비슷한 신세입니다. 그저 로스쿨 가기 유리한 점이 있는 정도로 인식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디지털, 로봇, 인공지능 같은 과학기술 문명이 세상을 지배하는 분위기가 깊어지자 한때 스티브 잡스를 필두로 인문학이 ‘반짝인기’를 얻는 듯했지만 역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없는 분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사시사철 매력과 흥미가 넘치는 분야도 아닙니다. 결국 유야무야 관심이 사그라졌고 인문학은 곧 제자리(?)를 찾아갔습니다.

취업이 어렵다 보니 철학과에는 자조적으로 떠도는 얘기가 있습니다. ‘제발 나 좀 데려가주세요. 필요한 논리는 어떻게든 만들어 바칠게요’(기회주의자) ‘고집불통이라 인공지능과도 싸운다’(논쟁가) ‘AI는 무슨, 그저 로스쿨 때문이지’(현실론자) ‘기술로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모신다고?’ 꼴사납다’(냉소주의자) 같은.

그러다 요즘 다시 철학이 ‘뜨고’ 있습니다. 최근 잭 클라크 앤스로픽 공동창업자는 AI시대에는 인문학적 소양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철학 전공자의 미래가 바뀔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종합적이고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전공의 중요성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질문이 필요한지 아는 것이며 무엇이 흥미로운지 판단할 수 있는 직관이 핵심역량이 될 것이며 그러면 철학학위는 좋은 일자리로 이어질 것이라고도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인공지능 시대에 오히려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거창하게 부풀리는 것도 불편합니다.(네, 저도 인문학 전공자입니다) 설사 그런 인력이 필요하다고 해도 초거대 기업의 아주 일부에만 가능하고 실제로 다수의 인문학 전공자가 일하는 대부분의 환경에서 인문학적 논의가 벌어지는 건 보지 못했습니다. 또 테크기업들이 원하는 정도라면 철학 전공의 깊이는 학부 수준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고도의 전문분야입니다. 그러니 테크기업 취직을 위해 철학과를 가겠다는 생각은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터무니없는 발상입니다.

다만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인공지능을 더 잘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융합적 사고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AI윤리나 언어분석과 같은 고도의 전문적인 내용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늘 궁금해하던 것들을 더 집요하게 끝까지 묻는 겁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의심하고, 다지고, 되받아치는, 여전히 생각을 멈추지 않고 인간이기를 고집하는 결기 같은 것은 인문학을 통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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