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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입력 2025-09-23 08:25

[신형범의 千글자]...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책을 읽다가 문득 나도 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있으면 내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공간은 거실 한 귀퉁이에 있는 책상입니다. 바깥으로 향한 창을 등지고 책상에 앉으면 거실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식탁과 주방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 식탁은 딸아이가 점령해 책상으로 사용 중이라 식탁으로써의 기능을 잃어버린지 오래됐습니다만.

여튼 책상에 앉아서 나는 글 쓰고 야구 보고 커피 마시며 때로는 간식을 먹으면서 피곤하면 잠시 졸기도 합니다. 그러니 나의 프라이버시는 식구들에게 100% 공개돼 있는 셈입니다.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여수의 외딴 섬에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작업공간을 마련한 얘기를 쓴 책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읽다가 나도 그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무소유, 즉 아무 것도 갖지 않을 것,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을 것을 주장하면서 평생 실천한 법정 스님도 버리지 못한 욕심이 하나 있다고 고백한 적 있습니다. ‘깨끗한 빈 방’입니다. ‘마음에 드는’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욕심은 천하의 법정스님도 어쩌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공간을 영어로는 ‘space’ ‘room’ ‘place’ 같은 단어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앞뒤 맥락에 따라 다르게 쓰이고 뉘앙스에 따른 의미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학교 다닐 때 독일어를 공부했는데 독일어로 공간은 ‘라움raum’입니다. 그런데 독일어 라움이 갖고 있는 독특한 의미는 영어로는 잘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독일인들이 갖고 있는 공간에 대한 독특한 의식이 반영된 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라움은 단독으로 쓸 때보다는 다른 단어와 결합될 때 의미가 잘 드러납니다.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공간과 연결되는 레벤스라움lebensraum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생활공간’ 혹은 ‘생활권’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한때 나치시대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정운은 자신의 작업실을 ‘슈필라움spielraum’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놀이spiel와 공간raum을 합한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여유 공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연관돼 있다면 ‘놀이공간’의 뜻도 되겠네요. 어쨌든 ‘슈필라움’의 중요한 의미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적 공간’이라는 게 핵심입니다. 이 말은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슈필라움의 뜻과 뉘앙스를 정확하게 옮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결론은 나도 슈필라움이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입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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