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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포토에세이]...20세기 최고 발명품

입력 2026-02-09 09:03

[신형범의 포토에세이]...20세기 최고 발명품
타이완의 남쪽 도시 가오슝에서 찍었습니다. 앵글의 주인공이 에어컨 실외기인 게 인상적입니다. 타이완은 열대에 가까운 아열대 기후로 우리보다 훨씬 덥고 강수량도 많습니다. 당연히 에어컨이 없으면 살기가 어렵습니다.

에어컨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레이반도의 끝에 붙은 조그만 섬마을을 세계금융과 무역 허브로 발전시킨 싱가포르 전 총리 리콴유입니다. 그가 살았을 때 2010년, 한 인터뷰에서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은 에어컨”이라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가전제품에 대한 찬사가 아닙니다. 열대 국가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인 통치철학이 담긴 말입니다. 그는 “에어컨이 없었다면 싱가포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의미를 되짚어 보면 우선 생산성의 혁명입니다. 열대의 고온다습한 기후는 인간의 집중력과 신체능력을 저하시킵니다. 리콴유는 에어컨이 인간의 지적 활동 시간을 온대지방과 동등한 수준으로 늘려 주었다고 본 것입니다. 그가 집권 후 가장 먼저 공공기관 사무실에 에어컨을 설치해 공무원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다음은 환경적 결정론을 극복한 것입니다. 과거 지리학자들은 열대지방 국가가 가난한 이유를 기후 탓으로 돌렸습니다. 리콴유는 에어컨이라는 기술을 통해 기후는 더 이상 국가 발전의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외국자본을 유치할 수 있었습니다. 글로벌 기업의 인재들이 싱가포르에서 쾌적하게 일하고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 금융과 물류 허브 국가가 되기 위한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리콴유가 살아있다면 뭐라고 말할까 궁금해집니다. 지금 에어컨은 ‘양날의 검’ 같습니다. 단순한 냉방기기를 넘어 생존과 불평등, 그리고 기후위기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리콴유 시절에 열대국가의 생존수단으로 에어컨이 생산성을 위한 선택이었다면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이 일상이 된 오늘날 에어컨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돼버렸습니다. 이제 에어컨의 보유 여부는 건강과 생명을 결정짓는 새로운 사회적 지표가 됐습니다.

불평등이 심화된 것도 두드러진 현상입니다. 에어컨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빈부를 나누는 하나의 기준이 됐습니다. 도시의 실내는 시원하지만 실외기는 뜨거운 바람을 내뿜어 도시 전체 온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열섬현상, 즉 누군가의 시원함은 다른 누군가의 뜨거움을 담보로 하는 사회적 모순이 돼버렸습니다.

또 중요한 한 가지, 기후위기의 역설입니다. 리콴유는 기술로 기후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에어컨은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더워질수록 에어컨을 더 많이 틀고 그로 인해 지구가 더 뜨거워지는 냉방의 역설에 직면해 있습니다. 리콴유의 에어컨 찬양은 기술이 인간의 ‘지리기후적 숙명’을 바꿀 수 있다는 실용주의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한때 인간을 환경으로부터 해방시킨 위대한 도구였으나 오늘날 에어컨은 지구와 지속 가능한 공존이라는 숙제를 안겨준 기술이 됐습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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