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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이순곤 기자

입력 2026-05-06 08:04

구글 이미지/GHK글로벌
구글 이미지/GHK글로벌
그 때였습니다 내가 박해영 작가의 ‘빅팬’이 된 것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뒤늦게 알게 됐고 이어서 《나의 해방일지》를 몰아서 보게 된 후부터. 박해영 작가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건 아니지만 나름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드라마가 끝나도 여운이 오래 지속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신작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정주행 중입니다. 30년째 TV 없이 사는 탓에 실시간으로 보지는 못하고 하루 늦게 OTT에 올라온 것을 보다가 귀에 박히는 대사나 인상적인 장면은 뒤로 돌려 다시 보는 짓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 황동만은 20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하면서 시나리오를 쓰는 중입니다. 대학 영화동아리 선후배 8명이 모인 ‘8인회’ 멤버 중 유일하게 데뷔를 못한 그는 늘 삐딱합니다. 자격지심 때문인지 선후배들 작품마다 난도질하고 면전에서 시나리오가 후졌다고 욕하는가 하면 단톡방과 소셜미디어에 악플로 도배질하는 찌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찌질한 짓을 해도 20년 동안 그의 본심과 재능을 알고 연민하며 안타깝게 생각하는 ‘8인회’ 멤버들은 웬만하면 받아주다가 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욕하고 경고하는 정도로 그치지만 이번에는 선을 넘었습니다. 그러자 영화제작사 대표 고혜진은 ‘8인회’가 수시로 모이는 카페 ‘아지트’에 황동만을 ‘출입금지’ 처벌(?)을 내립니다. 기한은 ‘여자친구가 생길 때까지’.

그러는 동안 영화제작사 PD인 여자 주인공 변은아의 마음이 자기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황동만은 자신도 그녀에게 가졌던 막연한 호감이 사실은 사랑의 감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자 그의 내면과 막혔던 시나리오 작업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황동만은 고백합니다. “사랑했어야 했다. 안 풀리는 글을 붙잡고 씨름할 게 아니라 사랑을 했어야 했다. 꾸역꾸역하던 글들이 주워 담을 수 없는 속도로 후루룩 쏟아져 나온다. 내 속에 어떤 엔진이 켜진 느낌이랄까. 모든 일들이 힘들이지 않고 저절로 돼 가는 느낌… 내 속에 이렇게 성능 좋은 엔진이 있었다니, 부릉… 사랑했어야 했다… 이제 난 못할 짓이 없다.”

그 시간, 변은아도 직장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진짜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황동만 같은 남자를 좋아할 수가 있어?” “이해하려고 하지 마요. 왜 자꾸 이해하려고 들어. 이해충인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은 싫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그냥 싫다고 하면 되는 걸 왜 자꾸 이해 안 된다고 하냐고요? 착한 척. 말을 좀 정직하고 분명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시선 하나에, 말 한 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인간이란 그런 나약한 존재라는 걸 뻔히 알면서 함부로 비웃고, 한숨 쉬고… 안 당해요. 이제…”

지난 주말 6화까지 분위기와 캐릭터들이 전작들과 자꾸 겹쳐 보여서 약간 식상해하던 차에 세상이 달라 보이고 죽어 있던 재능이 살아나고 사람까지 달라지는 ‘진짜 사랑’의 등장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눈빛 하나에, 말 한 마디에 상처받는 게 인간인데 그 와중에 위선으로 포장된 비굴한 삶을 언어로 낚아 올린 작가의 섬세함이 부러웠습니다. 특히 황동만에게 부족한 것이 재능이나 역량, 성실함이 아니라 ‘진짜 사랑’임을 간파한 고혜진의 ‘통찰’은 아무리 힘들어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절반 왔습니다. 박해영 작가는 깊숙이 숨겨져 있는 우리 내면의 감정을 또 어떻게 길어 올릴지… ^^*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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