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범의 千글자]...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31708392900105046a9e4dd7f220867377.jpg&nmt=30)
기억을 더듬다 보니 그 시절에 느꼈던 묘한 감정이 하나 떠오릅니다. 지금은 없어진 종로의 대형서점은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휴대폰은 고사하고 삐삐도 없던 시절, 약속이 어긋난 사람들이 메모를 써서 압정으로 꽂아둔 종이쪽지가 서점에서 제공한 게시판을 빼곡히 채웠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에겐 비둘기 다리에 편지를 묶어 날려보내는 것과 비슷한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약속한 사람을 마냥 기다릴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음 상태는 시시각각 바뀌었습니다. 처음엔 곧 만날 기대감에 설렙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늦네’ ‘차가 막히나’ ‘왜 안 오지’ ‘약속을 잊었나’ ‘그냥 갈까’ ‘10분만 더 기다려 보자’ ‘괘씸한데’ ‘화를 낼까’ 갖가지 생각과 감정이 뒤섞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토록 수다스럽다는 것도 그때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것을 견디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을 내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불러내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었습니다. 소통의 단절이 오히려 상대를 더 깊이 상상하게 만드는 역설적 풍요로움을 주었습니다.
스위스 출신의 영문학자 해럴드 슈와이저는 자기 책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우리의 몸 속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과 한몸이다. 우리는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시간을 중요한 것으로 만들면서 스스로 중요한 존재가 된다. 기다리는 동안, 내면에서 울리는 지속의 선율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우리와 우리의 존재가 한 음조로 공명하기 시작한다.”
홀로 있는 법을 배운 사람은 세상과 한몸이 된다는 뜻입니다. 슈와이저는 기다림은 우리가 일상에서 쓸모없는 철 지난 골동품 취급을 받는 낯선 체험 같은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체험을 지속함으로써 자기 시간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그 누구도 잊혀지지 않는 이상적인 공동체가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기다림’이 없습니다. 어디쯤 오는지, 언제 도착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하는 시간에도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탐색하고 아예 시간이 많이 남으면 다른 볼일을 보면서 지루할(기다릴) 틈을 만들지 않습니다. 이러다 ‘기다리다’라는 단어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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