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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대화의 격률

이순곤 기자

입력 2026-05-12 08:07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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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비가 왔고 지난 주까지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옷을 입기가 영 성가셨습니다. 한낮에는 땀이 날 정도로 더워서 가벼운 반소매 셔츠를 입지만 일정이 밤 늦게까지 이어질 때는 겉옷을 챙겨야 했습니다. 등과 이마에 땀이 맺히고 겨드랑이가 축축할 정도로 더운가 하면 해가 떨어지고 공기가 식으면 벗어 놓았던 겉옷을 다시 챙겨야 했고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길은 바람까지 불어 쌀쌀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에어컨 바람과 출퇴근 시간의 찜통까지 계산에 넣어야 했습니다. 어느 날은 으스스할 정도로 냉방을 세게 하고 어떤 땐 객실 유리창이 뿌옇게 될 정도로 더웠습니다. 결국 어떤 옷을 골라 입든 변덕스러운 날씨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중요하지도 않은 날씨 얘기를 지금 이렇게 장황하게 말하는 이유는 어떤 글을 읽다가 영국 언어철학자 폴 그라이스의 유명한 ‘대화의 격률(Maxims of Conversation)’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폴 그라이스는 사람들이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지켜야 할 네 가지 규칙을 제시했는데 정보의 양과 질, 관련성 그리고 태도입니다.

‘첫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상대가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말한다.’ 두 가지를 물었는데 하나만 답하거나 굳이 알 필요 없는 것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지 말라는 겁니다. ‘둘째, 본인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참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지어낸 거짓말은 물론 잘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 역시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셋째, 말하려는 내용이 지금까지 대화의 흐름과 연관된 것이어야 한다.’ 이 말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거나 동문서답하는 걸 말합니다. 마지막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단명료하고 논리 정연하게 전달한다.’ 애매하거나 헷갈리는 표현을 피하고 조리 있게 정리해서 알아듣기 쉽게 말하라는 겁니다.

특별할 것 없는 상식적인 얘기지만 실제로 대화 중에 이 네 가지를 모두 지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이 이 규칙을 지킨다면 대부분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 간 불통이, 지금 우리 사회가 소통이 안 되는 이유는 이런 대화의 기본 규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특히 심각한 건 정보의 질, 즉 진실성의 문제입니다. 인공지능이 부정확한 정보나 멋대로 만들어 낸 허구를 ‘할루시네이션’이라고 호들갑 떱니다. 하지만 정작 유력 정치인이나 두터운 팬덤을 형성한 유튜버, 유명 인플루언서가 가짜 정보를 퍼뜨리는 것에는 관대한 것 같습니다. 의도적으로 거짓을 유포한 게 아니라 자신은 진실이라고 믿었다 하더라도 잘못된 정보는 대화를, 나아가 세상을 어지럽힙니다. 그런 점에서 앞서 장황한 날씨 얘기는 첫 번째 규칙을 벗어나지만 애교 수준 아닌가요? ^^*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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